종교와 과학이 머리 맞대다…정 대주교-황우석 교수 만나

  • 입력 2005년 6월 16일 03시 25분


서울대 황우석 교수(왼쪽)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15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주교관 집무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대 황우석 교수(왼쪽)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15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주교관 집무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사진공동취재단
15일 오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30여명의 언론사 카메라 기자들이 서울 명동성당 주교관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놓고 입장 차이를 보여 온 서울대 황우석(黃禹錫) 교수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鄭鎭奭) 대주교가 이날 서울 명동성당 주교관 집무실에서 회동하기로 한 일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약속시간인 3시에 조금 못 미친 2시 57분 황 교수가 연구팀의 일원이자 천주교 신자인 서울대 의대 안규리(安圭里) 교수와 함께 승용차 편으로 도착해 주교관 정문으로 들어서자 정 대주교가 마중 나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이때 황 교수는 정 대주교에게 90도 가까이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해 예의를 갖췄다. 기자들이 어떤 대화를 나눌지 물었다.

황 교수="어른께 배움을 얻으러 왔기 때문에 정 대주교님의 말씀을 겸허히 듣고 잘 익히고 가겠습니다."

정 대주교="국민에게 희망을 주시고 국가를 위해 큰 공로를 세운 분이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와 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국민과 불치병 환자들을 위해 유익한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이어 두 사람은 보도진을 물리치고 3층 주교관 집무실로 올라가 비공개로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는 안 교수와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허영엽(許榮燁) 신부도 동석했다.

회동시간은 당초 예상됐던 30분을 넘겨 50분이 걸렸다. 줄기세포 연구와 여성 난자의 사용 등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헤어질 때도 밝은 표정을 지었다.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는 쉴 새 없이 터졌다.

정 대주교="두 사람 사이에 이견이 전혀 없었습니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위해 평생 헌신하신 황 교수님에게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도록 기원하겠습니다. 배아줄기세포보다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황 교수님에게 말씀드렸더니 황 교수님은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서로 모자라는 점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이뤄져야 져야 한다. 이 상호보완 연구가 성공에 이를 때까지 이해해줬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히셨다"

황 교수="꾸지람을 받으러 왔는데 큰 축복과 가르침을 받고 갑니다. 대주교님은 성직자이신 줄로만 알았는데 저희보다 더 뛰어난 과학자인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표면적으로 두 사람은 웃으며 이견이 없다고 헤어졌다. 하지만 안 교수와 허 신부의 회동내용 브리핑에서는 봉합할 수 없는 양측의 입장차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양측이 합의한 '질서에 대한 존중-과학자의 양심'이란 제목의 발표문에는 두 사람의 입장은 병치됐다.

'천주교는 수정을 인간 생명의 시작으로 보고 있어서 배아 파괴를 인간 파괴로 간주한다. 이번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역시 인간배아로 규정하고 있다.' (정 대주교)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부터 직접 얻은 피부세포를 체세포 핵이식이라는 기술로 유도한 서울대 연구팀의 줄기세포는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라는 수정의 과정을 일체 거치지 않았으며, 또한 (현재까지는) 착상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 생명으로 발전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소상히 설명했다.' (황 교수)

이날 회동결과를 설명하면서 안 교수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로 치료하지 못하는 불치병 환자들이 있다. 두 연구 모두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고 밝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해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또 안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3년간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들어간 연구비용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들어간 연구비의 2.4배다. 외국의 경우 두 연구의 비용이 비슷하다. 우리만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많이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날 회동에서 양측은 서로 기존 입장을 견지한 셈이다. 합의를 본 것이 있다면 발표문 마지막 부분에도 있듯이 '어떠한 경우에도 과학자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도였다. 두 사람이 "이견이 없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인 셈이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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