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지극한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가 퇴계와 퇴계사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퇴계가 한국 성리학의 주춧돌을 놓은 훌륭한 유학자이고 중국의 성리학자보다 더욱 정밀하게 주자를 연구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흔히 퇴계사상의 핵심은 이기론(理氣論)보다 도덕적 마음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데 있다고 한다. 퇴계는 욕망의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된 순수한 영혼이 마음을 지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덕적 직관이 가능하며, 성인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일반적인 마음은 기의 드러남이지만 도덕적 정신은 원리 그 자체가 드러난 것’이라는 독창적인 주장이었다.
이러한 퇴계의 주장에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이 반론을 제기하면서 소위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이라는 조선시대 최대의 성리학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퇴계는 자신의 학설을 약간 수정하여 ‘행위를 유발하는 일반적인 감성은 기의 드러남이나 양심의 규제를 받고, 도덕적 감성은 이가 드러난 것인데 기에 의해 현실화된다(七情氣發而理乘之 四端理發而氣隨之)’고 한다. 아마도 퇴계는 도덕을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성의 문제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퇴계는 도덕적 감성을 일반적인 감성과 분리하고 이를 기에서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형이상학을 전개하게 되고 지적인 훈련보다는 감성적 수양(敬)을 중시하게 된다고 한다.
거칠지만 쉽게 요약한다고 해 보았는데 현대의 한국인이 이해하기는 역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퇴계선생문집’을 단지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적어도 한국의 지성인이라면, 그리고 참된 선비정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학문적 고집은 있지만 제자뻘인 후배와 격의 없이 토론을 벌이고, 고고한 선비이면서 매화가 피었다고 술에 취할 수 있는 인간 퇴계는 그의 글을 읽어야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퇴계 선생의 글을 직접 접할 필요가 있다.
‘퇴계선생문집’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다 읽기 힘들다. 퇴계의 성리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성학십도(聖學十圖)’를, 학문적 태도를 아울러 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고봉과 주고받은 서신을 묶은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를, 퇴계의 사상을 두루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퇴계문집’(민족문화추진회)을 권하고 싶다.
허남진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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