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파우스트의 거래’ …산업계와 결탁한 대학의 명암

  • 입력 2005년 6월 18일 07시 56분


◇파우스트의 거래/데렉 복 지음·김홍덕 외 옮김/229쪽·1만2000원·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상아탑은 사라졌다. 중세 이래 학문의 탐구와 전승에 전념해온 대학은 이제 사회와 호흡하며 많은 것을 주고받는다. 교수들은 아이디어를 기업에 제공하여 유용한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해낸다. 기업과 사회는 물질적 대가를 제공하며, 대학은 이를 바탕으로 유능한 인재와 장비를 확보하여 경쟁력을 제고한다. 바람직한 발전인가?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저자는 ‘분명 바람직한 면이 크다’고 전제한다. 대학과 사회 간의 협조가 경제성장과 기술혁신을 촉진하며, 대학이 현실 세계로부터 동떨어지지 않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는 ‘그러나…’라는 단서가 따른다. 대학과 사회의 거래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거래’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에 대한 기업의 지원은 학문의 순수성을 왜곡하는 데서 나아가 연구 자체의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대학의 연구원은 제약회사로부터 고가의 약품이 값싼 대용품보다 얼마나 우수한지 연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연구원이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자 회사는 그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연구 결과는 7년이나 지나 학술지에 발표될 수 있었다.

미국 대학들이 수익성 제고를 위해 경쟁적으로 열고 있는 ‘열린’ 인터넷 강의는 어떤가. ‘가능한 한 많은 수강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재미있고 매력적인 강사를 이용하고, 이목을 끄는 시청각 교재를 보강하되 개별 지도나 질의응답은 회피하고 있다’고 저자는 질타한다. 쌍방향성이 보장된다는 인터넷 교육이 전혀 ‘쌍방향’과 관계없는 질 낮은 학습 방법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가 풍경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운동 팀도 문제로 지적된다. 학업이 ‘운동 분야에서의 성공’이라는 목표에 저해 요인이 되기 때문에 운동선수들은 대학 사회에서 외톨이로 남을 수밖에 없다.

“건전하고 책임 있는 시민을 교육시키는 일은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다. 위대한 철학이나 자연과학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 역시 그렇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보다 훨씬 중요한 이런 가치들이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된다.”

최근 국내 출간된 영국인 프랭크 퓨레디 씨의 책 ‘그 많던 지식인들은 어디로 갔는가’(청어람미디어)에서 보듯 산업계와 결탁한 대학의 질적 저하는 서구 지식인들이 갖는 위기감의 큰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여러 논의 가운데서도 이 책은 ‘무한 경쟁’의 순환고리에 놓이게 된 대학의 사회적 환경을 상세히 담아내 설득력을 높이는 동시에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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