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공자 노자 석가’

  • 입력 2005년 6월 18일 0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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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노자 석가/모로하시 데쓰지 지음·심우성 옮김/267쪽·1만2000원·동아시아(2003년 발간)

동양의 3대 학문인 유불도(儒佛道)는 서구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아시아적 정체성을 보장하는 정신의 고향이다. 해마다 입시에서도 어느 대학에선가는 반드시 논술과 구술면접 문제가 동양 고전에서 출제되곤 한다. 그동안 논어, 맹자, 대학, 순자, 장자, 아함경 등 다양한 경전에서 문제가 나왔다. 2500여 년을 전해 내려온 성인들의 가르침과 우리가 직면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연결시켜 깊이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동양의 고전들은 막상 읽으려 하면 고어투의 문체와 한자 때문에 쉽게 다가서기가 어렵다. ‘도’나 ‘공’ 같은 개념은 읽어도 읽어도 알쏭달쏭하다. 경구와 비유가 많아 쉽게 맥락이 터득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각 학문의 원조인 공자와 노자, 석가를 불러 모아 직접 자신의 사상을 쉽게 풀어 설명하게 하였다. 대가는 어렵게 말하지 않는 법. 3인이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가상의 3자회담’을 진행한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니 당연히 격조 있는 담화를 보여주고, 우리는 방청객이 되어 흥미진진한 3인 토론의 진수를 관람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상상으로는 가능한 일이다. 회담을 성사시킨 저자의 탁월한 능력과 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세 사람은 각자의 사상뿐 아니라 음식이나 산수와 같은 취향에 대해서도 논한다. 먼저 공자가 ‘인자요산(仁者樂山)’을 읊으며 높은 산에 올라가 광활한 생각을 품어야 한다고 말하면,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들어 계곡의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는 자세를 역설한다. 각자의 철학 내용을 문학적으로 활용하는 저자의 재치가 인상 깊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 사람은 성실하게 묻고 답하면서 각자의 인간관과 우주관을 탐색한다. 공(空), 무(無), 천(天) 등의 개념이 대가들의 입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되고, 서로의 차이와 공통점을 알아간다. 노자와 공자가 대립하면 석가가 즉석에서 중재하기도 한다. 마치 연극을 보는 듯 흥미롭다.

세 사람 모두 상대방의 말을 유심히 듣고 핵심을 파악하는 미덕이 뛰어나다. 주장을 펼 때 개념 정의, 인용, 예시를 정확히 구사하는 논리력도 수준급이다. 이들은 토론자세마저도 모범적이다.

최근 구술에서는 토론면접이 강화되고 있다. 4명 내외의 학생들이 한 팀이 되어 주어진 주제를 토론하면 면접관은 옆에 앉아 평가를 하는 방식이다. 토론에서는 논리적인 주장뿐 아니라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과정도 중요하다. 이 책 안에서 숨은 장점을 찾아보며, 동양 고전의 깊이와 품위 있는 토론의 방법을 제대로 느껴보기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사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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