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노드라마(1인극)는 지루할 것이라 지레짐작하지만, 오직 한 명에게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작품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는 것이 모노드라마만의 매력이다. 연극이 흘러갈수록 여러 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듯한 환상에 빠지는 것은 모노드라마를 접해 본 관객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 때문에 모노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의 역량이다. 김성녀 선배는 처음 하는 모노드라마인데도 훌륭하게 그녀만의 무대를 일궈냈다. 지난 수년간 수천 회의 모노드라마를 해온 나조차도 어려운 남자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잘 소화하며,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타고난 미성으로 중간 중간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객석에선 박수가 터졌다. 그 연배에 그렇게 상큼하고 사랑스러운 표정과 몸짓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감탄스러웠다. 여유 있게 극을 밀었다 당겼다 하며 마음껏 판을 펼치는 김성녀. 그런 힘은 배우라고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보여지는 것도 아니다. 30년 연기 경력과 몇 십만 명의 관객을 휘어잡은 마당놀이에서 쌓은 오랜 노하우가 괜한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녀는 마당놀이뿐 아니라 정극무대에서도 사랑스러운 여배우로 우뚝 섰다.
좌우로 이념이 대립되던 시절을 다루었기에 자칫 무거울 수 있었던 이 연극은, 깔끔한 연출과 배우 김성녀의 물 오른 연기 덕에 감동적인 가족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1인 다역의 모노드라마를 하다보면 배우는 종종 공포스러운 순간과 마주친다. 한 인물의 감정에 너무 몰입해 다른 인물로 넘어갈 수 없는 순간이다. 어쩌면 영점 몇 초에 불과한 지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배우에게는 한없이 길게 느껴지고 두려운 순간이다. 그런 순간에는 대사를 해도 내가 대사를 하는 것 같지 않고, 마치 대사의 장면이 눈앞에서 저절로 펼쳐지는 것 같다. 그녀 역시 공연을 하면서 스스로 감정을 한두 번 추스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가 짠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과 벽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그랬다. 관객들은 아비의 사랑에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그 감정의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봤다.
많은 배우들이 모노드라마를 끝낸 뒤 슬럼프에 빠진다. 모든 걸 다 보여주었기 때문에 다음엔 또 뭘 보여줘야 하나, 라는 혼란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만은 그런 혼란에서 비켜나 있을 것이다. 다 보여줘도 늘 더 보여줄 것이 남은 여배우, 그러기 위해 늘 자신을 담금질하는 그녀이기에….
7월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우림 청담 씨어터. 02-569-0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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