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한국 보수층은 자유주의를 축으로 집결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분명히 다른 뿌리를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 보수세력의 정체성을 묻는 책이 나왔다. 임채원(40·사진) 한국행정연구소 연구원이 저술한 ‘보수의 빈곤과 정책담론’(한울)이다.
임 연구원은 이 책에서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연성화한 사민주의(제3의 길), 중상주의, 보수주의의 역사적 연원과 변용을 추적했다. 또 이들 이념에 따라 경제, 조세, 노동, 복지, 교육 정책이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는가를 분석했다.
“한국에서 ‘이념의 과잉과 정책의 빈곤’이 논의되지만 제가 보기엔 정책의 빈곤은 이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어 발생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문제는 입으로 말하는 이념과 이를 실천하는 정책이 일치하지 않아 혼돈을 낳는 것입니다.”
그가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보수주의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의 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반대를 위해 탄생했으며 △인간과 제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목적의식적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분권적 질서를 옹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온정주의를 3대 기본원칙으로 삼는다. 이는 오늘날 영국 보수당과 미국 공화당의 강령이나 정책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 보수주의의 취약성은 이런 기본원칙에서 확인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일사불란한 중앙집권적 정치권력을 더 선호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온정주의가 부족합니다.”
그는 또 “한국에서 보수세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키려는 보수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한국의 보수주의의 취약성을 지적한다.
“보수주의는 세계적 보편주의에 맞서 국가별로 구체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와 전통을 분명히 밝힙니다. 영국의 보수주의는 유럽대륙의 자유주의 물결에 맞서 왕정, 국교회, 일국주의를 영국의 고유가치로 수호해 왔습니다. 반면 한국의 보수가 지키려는 한국적 가치와 전통은 무엇인지가 불분명합니다.”
한국의 보수세력에 그 가치는 자유민주주의 아니었던가.
“사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손을 잡았지만 대표적 자유주의 이론가인 하이에크조차 ‘나는 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를 조목조목 밝혔을 만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다릅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적 가치가 아니라 세계 보편의 가치입니다.”
임 연구원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가 1990년대 후반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한 뒤 하이에크에 심취해 자유주의와 ‘제3의 길’에 눈을 떴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보수세력이 자유주의 재평가 움직임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보수주의 또는 이를 계승한 공동체주의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아 책을 펴내게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