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추기경은 2003년 11월 마닐라 대주교 자리에서 은퇴하기 전부터 신장 질환과 당뇨병 등을 앓아 왔으며 4월 현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단 회의(콘클라베)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산아제한 이라크전쟁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혀 온 신 추기경은 아시아의 가장 저명한 종교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유머도 풍부해서 이름 신(Sin)을 이용해 자기 집을 ‘죄(Sin)의 집’이라고 부르곤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화상(華商)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16자녀 중 열네째로 태어난 그가 세계무대에 등장한 것은 1986년. 독재자 마르코스와 결별한 당시 군 참모차장 피델 라모스와 국방장관 후안 폰세 엔릴레를 보호하기 위해 필리핀인들에게 마닐라의 경찰과 군 본부를 포위하라고 요구하면서부터다. 이는 ‘피플 파워’ 혁명으로 이어져 세계적으로 여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신 추기경은 또 2001년 1월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부패와 실정 혐의로 축출하는 데 기여했으나 이로 인해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지지한 빈민층과 갈등을 겪었다. 2001년 5월 에스트라다 대통령 추종자들의 반발에 부닥친 신 추기경은 빈민층에 사과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1954년 신부로 서품된 그는 1967년 주교, 1972년 대주교에 올랐으며 1976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됐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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