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출판계, 故 김성재 일지사대표 추모

  • 입력 2005년 6월 23일 03시 02분


김성재 일지사 대표가 올해 3월 ‘한국학보’ 편집위원들과 편집회의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 대표, 김윤식 신용하 박용운 한영우 교수. 사진 제공 일지사
김성재 일지사 대표가 올해 3월 ‘한국학보’ 편집위원들과 편집회의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 대표, 김윤식 신용하 박용운 한영우 교수. 사진 제공 일지사

1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출판사인 일지사 사무실에 김윤식(金允植·국문학) 명지대 석좌교수, 한영우(韓永愚·한국사) 한림대 특임교수, 신용하(愼鏞廈·한국독립운동사) 한양대 석좌교수, 박용운(朴龍雲·한국사) 고려대 교수가 모였다. 올해 가을 발간 예정인 한국학 계간지 ‘한국학보’(일지사 발행)의 마지막 호(120호) 편집회의 자리였다. 그런데 늘 참석하던 김성재(金聖哉) 일지사 대표는 불참했다. 건강 때문이었다.

사흘 뒤인 21일,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30년간 한국학보를 발간해 온 김 대표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한 교수는 22일 이렇게 말했다.

“한국학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큰 버팀목이 쓰러진 겁니다. 김 대표께서 올해 초 수술을 받기 전에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나중에 유언을 보니 ‘적자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한국학보를 꼭 120호까지는 내고 종간하라. 종간사는 1975년 창간사를 썼던 김윤식 교수가 쓰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학보와 김 대표의 운명이 같이 가는구나 생각하니 참 묘한 느낌입니다.”

지난 50년간 일지사가 발간해 온 학술서적도 그랬지만 계간지인 한국학보는 특히 국어국문학 국사학 민속학 인류학 고고학 미술사학 등 한국학을 발전시키고 젊은 학자를 발굴 육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국학보 종간사를 쓰게 된 김 교수는 30여 년간 고인과 함께 학술지를 만들고 등산하고 절을 찾아다닌 사이.

“한국학보가 무려 30년간 계속돼 온 것은 분명 김 대표의 고집 덕분이었습니다. 일지(一志)라는 출판사 이름 그대로 결벽하리만큼 일관된 삶을 살아온 분이죠.”

고인의 고집은 오자 하나 용납하지 않는 일, 발간을 앞둔 책에 문제가 발생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책을 파기했던 일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금난으로 한국학보 발간이 중단 위기에 처했던 2000년, 여기저기 지원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한 사업가가 출판 비용을 대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러나 고인은 이를 거절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전병석(田炳晳) 문예출판사 대표는 “김 대표는 ‘공공 기금도 아니고 개인 사업가의 돈을 빌려 한국학 학술지를 낼 수는 없다’며 빚을 내서라도 계속 출간하겠다고 고집했다”면서 “출판인으로서의 대단한 자존심이었다”고 말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에는 22일 정진숙(鄭鎭肅) 을유문화사 회장, 박맹호(朴孟浩) 대한출판문화협회장, 김경희(金京熙) 지식산업사 대표, 진홍섭(秦弘燮·한국미술사) 전 이화여대박물관장, 최재석(崔在錫·사회학) 고려대 명예교수, 김종규(金宗圭) 한국박물관협회장 등 학계 출판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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