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아동극단 ‘사다리’ 평일 저녁공연 나선 이유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09분


18년 간 묵묵히 어린이극 개척의 외길을 걸어온 극단 사다리가 마침내 ‘꿈’을 이뤘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 국내 최초의 어린이 전용 극장인 ‘사다리 아트센터’의 문을 연 것. 저녁에 성인극을 공연하는 대학로의 소극장을 낮시간만 빌려 공연하며 ‘집 없는 설움’을 겪어온 극단 사다리가 이제는 어린이 책 5000여 권이 구비된 로비에, 화장실엔 아이들 키 높이에 맞춘 세면기까지 갖춘 번듯한 ‘내 집’을 마련한 것이다.

17일 열린 개관식에는 400여 명이 넘는 공연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오랜 꿈을 이룬 극단 사다리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하지만 입버릇처럼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던 정현욱(39) 대표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어렵사리 공간은 마련했지만 정작 ‘마음껏 뛰어 놀’ 주인공인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방과 후 영어학원이나 피아노학원 등을 다니느라 바빠 낮 공연을 보러 올 시간이 없다는 것. 주말에는 좌석이 없어 발길을 돌리는 관객이 있을 만큼 좋은 공연이라도 평일 낮에는 객석이 텅텅 빈다.

고민 끝에 그는 이번에 사다리 아트센터를 개관하면서 처음으로 ‘평일 오후 7시 반 공연’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학원에 다녀 온 후에라도 공연을 보러 와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영어학원이나 수학교실에서는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 많은 것들을 아이들은 공연을 통해 배울 수 있다”며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절부터 어린이극에만 매달려온 그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한 셈이다.

“모쪼록 사다리 아트센터에서 어린이극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부모가 되는 훗날에는 아이 손을 잡고 학원 대신 극장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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