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연애는 필수과목이다. 과거에는 부모나 중매쟁이가 짝을 지어줬지만 요즘은 스스로 짝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혹은 현대적 연애의 1막 1장이다. 그러나 유혹은 동서를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타락, 속임수, 성적 정복을 함축한 단어였다. 기독교 창세신화에서 인류 최초의 유혹자는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게 만든 뱀, 곧 사탄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금욕적인 이성과 영혼의 불멸성을 부여했다면 사탄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들, 즉 동물성과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러나 너무도 향락적인 운명을 부여했다. 돈 후안이나 카사노바 같은 유혹의 명수들은 바로 이 동물성에 충실한 이들이다.
프랑스의 유명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그런 인간의 동물성을 직시함으로써 이를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이를 위해 오감과 호르몬으로 구성된 ‘감각의 계곡’에 뛰어들고 근친상간과 소아애(小兒愛)와 같은 ‘금기의 늪’을 헤쳐 나간다. 그 탐험의 지도와 나침반은 동물행태학, 진화생물학, 인류학 같은 과학이지만 인문학적 지식을 탄탄한 지팡이로 삼는다.》
▽“그녀는 리볼버 같은 눈을 지녔네. 그녀의 시선은 목숨을 앗아가네”=유혹의 첫째 감각은 시각이다. 파수꾼 기질의 여성보다는 사냥꾼 기질의 남성들에겐 더욱 그렇다. 남자들은 여성의 동공 크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남자들은 같은 여자의 사진을 놓고도 동공을 더 크게 한 사진에 만장일치로 호감을 보인다. 이를 눈치 챈 르네상스기 여자들은 동공을 확대하고 시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아트로핀 제제를 주성분으로 한 식물의 추출물을 안약으로 썼다. 아트로핀 성분은 심장박동을 가속화하고, 경련을 일으키며 입술을 바싹 마르게 해 사랑에 빠졌을 때와 똑같은 증상을 가져다준다. 그 식물의 이름은 벨라도나(‘아름다운 부인’이라는 뜻)다.
▽“그의 노래로 나를 부드럽게 죽여주세요”=시각이 유혹의 대상을 발견하게 한다면 청각으로부터 진정한 유혹이 시작된다. 여자들은 테너보다는 베이스에 더 약하다. 프랭크 시내트라를 비롯한 이탈리아 남성들의 약간 쉰 목소리만큼 여성을 유혹하는 목소리는 없다. 반면 남자들은 메릴린 먼로의 코맹맹이 음성이나 ‘뽀빠이’의 올리브처럼 높고 새된 목소리에 매료된다. 한편 나이트클럽에서 고막이 터지도록 큰 음악을 트는 것은 소리가 알코올이나 춤처럼 이성이 관장하는 전두엽의 활동을 막고 본능과 감정을 관장하는 대뇌변연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 강렬한 소리는 자율신경계의 아세틸콜린을 봉쇄해 아트로핀의 작용과 유사한 증세를 일으킨다.
▽“사랑의 맛과 냄새는 곧 땀과 성기의 맛과 냄새다”=사랑은 서로를 맛보고자하는 욕망이다. 키스는 서로를 맛보는 행위다. 브라질의 농촌에서는 말 안 듣는 남편들을 휘어잡을 필요가 있을 때 독특한 ‘사랑의 묘약’을 먹인다. 바로 아주 오랫동안 입었던 팬티를 끓여서 준비한 커피다. 한편 후각은 유혹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다른 감각은 포기할 수 있지만 숨을 쉬고 살려면 후각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 중 “2주 후면 돌아갈 테니 몸을 씻지 말고 기다려주오”라는 문구나 “잠잘 때 내가 걸치는 것은 샤넬 넘버 5뿐”이라는 먼로의 말은 후각의 위력을 말해준다. 성적 페로몬에 대한 숱한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당신을 사랑해, 왜냐하면 당신은 너무 어리고 어리고 어리니까”=먼로의 진짜 매력은 그녀가 애교의 명수라는 데 있다. 그녀는 어린아이 같은 매력으로 남자들의 넋을 빼앗은 것이다. 인간은 갈수록 어려보이는 외모의 이성에게 유혹된다. 인류가 어린 시기를 연장하는 ‘유형성숙(幼形成熟)’을 진화전략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형성숙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인간의 성장판은 3만 년 전엔 18세 전후에 성장을 멈췄지만 오늘날 이 조직은 25세까지 계속 자란다. 원조교제나 소아애는 그 부작용이다.
P.S. 남성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저자의 노력은 몇 군데서 한계에 부닥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어리고 예쁜 이성을 좋아하는 것을 남성적 현상으로만 국한시킨다. 프랑스에는 ‘꽃미남 신드롬’이 아직 상륙하지 않았나보다. 원제 S´eduire(2004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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