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목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어보자. 말 그대로 중국 열하(熱河)에 있는 피서산장(避暑山莊)이라는 뜻이다. 베이징(北京)에서 동북쪽으로 260km 떨어진 허베이(河北) 성 청더(承德)라는 곳에 있는 청나라 황제들의 여름 별장. 청더의 옛 이름은 열하.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배경이었던 곳이다.
피서산장은 청의 강희제(康熙帝) 때인 1703년 조성하기 시작해 옹정제(雍正帝)를 거쳐 건륭제(乾隆帝) 때인 1790년에 마무리되었다. 약 170만 평. 울울창창 자연 풍광이 수려하고 역사 유적도 많아 중국 10대 명승으로 꼽혀 왔고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청대의 황제들은 대부분 4월부터 9월까지 베이징의 더위를 피해 피서산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휴식만 취한 것이 아니라 정사(政事)도 보았다. 그래서 피서산장은 쯔진청(紫禁城)에 이은 제2의 정치적 중심지로 불렸다.
이 책은 피서산장을 중심으로 숨 가쁘게 펼쳐졌던 청대의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다. 특정 공간을 통해 청대의 유장한 역사를 들여다보았다는 점이 신선하다. 공동 저자는 역사 현장이나 고분 발굴 과정을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 연결시켜 다큐멘터리식으로 써 온 작가들.
가장 박진감 넘치는 대목은 피서산장에서의 권력투쟁. 강희제는 61년 동안 황제의 지위를 누렸다. 그의 오랜 집권은 황제에 오르고 싶어 하는 35명의 아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호시탐탐 부황(父皇)을 살해하려는 황자(皇子)들, 경계를 늦추지 않는 아버지 강희제…. 피서산장은 살의(殺意)가 넘나드는 긴장의 공간이었다.
강희제가 숨을 거둠으로써 61년 통치의 막을 내렸을 때, 35명의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을 묘사한 대목은 특히 압권이다. 치열하고 잔인하며 때로는 비열한 그 투쟁의 과정이 서늘하고 긴박하다.
또 어느 날 밤 목이 잘려 죽었다는 옹정제, 그 뒤에 숨겨진 여인 이야기 등 청 황실과 피서산장에 얽힌 다양한 미스터리도 읽는 재미가 각별하다.
피서산장의 역사는 청의 흥망성쇠 그 영욕의 역사와 그대로 일치한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18세기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다. 1793년 영국 사절단은 청의 문호를 열기 위해 피서산장의 건륭제를 알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유럽의 제국 영국은 동양의 제국 앞에서 삼궤구고(三궤九叩·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 땅에 대는 것)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번영의 상징이었던 피서산장은 19세기에 일대 반전에 직면하게 된다. 1850년 영국의 침공을 받은 함풍제(咸豊帝)는 베이징을 버리고 서둘러 피서산장으로 몸을 피했다. 함풍제는 환궁을 두려워 한 채 11년 뒤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그렇게 청은 기울었고 피서산장도 기울어갔다.
피서산장의 건립 과정과 구조 및 아름다움에 관한 설명도 놓치기 아까운 내용이다. 중국사에 관심 있는 사람, 특히 열하로 ‘도피’하고픈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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