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그림 ‘씨름’의 가운데에는 두 선수가 있다. 그리고 그림의 네 귀퉁이에는 구경꾼들이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이 발견된다. 각 귀퉁이의 구경꾼을 세어 보면 오른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각각 5, 2, 5, 8명이다. 그런데 이 숫자들을 대각선으로 2명의 선수를 포함해 어느 쪽으로 합치나 정확히 12가 된다.
수학에서는 이처럼 신기한 수의 배열을 ‘X자형 마방진’이라 부른다. 어느 쪽으로 합해도 같은 수가 되는 신비한 숫자 배열을 통해 김홍도는 그림을 보는 이의 눈길을 씨름이 벌어지는 한복판으로 집중시키면서도 구경꾼 수의 변화를 통해 화면에 숨통을 틔워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민중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했던 위대한 화가 김홍도의 그림에는 이처럼 정교한 수학적 장치가 놓여 있다.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과 현직 고등학교 수학교사이면서 KBS 인기 교양 교육프로그램 ‘스펀지’에서 수학 자문역을 맡고 있는 김흥규 씨가 함께 쓴 이 책은 이처럼 미술과 수학을 절묘하게 결합한 책이다.
미술을 키운 자양분이 다름 아닌 수학이라는 접근법으로 근현대 명화 29점을 소개하면서 그림마다 수학적 정교함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대화체로 설명한다. 수학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미적 감각과 수학적 상상력을 함께 기를 수 있도록 안내한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교과서인 알베르티는 ‘회화론’에서 ‘화가가 기하학을 모르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현대미술도 마찬가지다.
수학과 미술은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데다 미술의 주요 형식인 조화와 균형, 통일성, 대칭 등이 모두 수학적 요소다. 이 같은 사전 정보를 알고 있으면 그림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쉽다는 것이 저자들의 이야기다.
독일의 르네상스시대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수학자들도 숭배하는 기하학의 전문가. 그의 그림에는 다각형과 구형, 컴퍼스, 마방진, 저울, 자, 모래시계 등 기하학에 관련된 도구들이 총동원됐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수학적 비례를 엄격히 준수해 아름다움의 표본인 황금비율로 비너스의 몸체를 그렸다. 저자들은 또 앤디 워홀의 ‘100개의 마릴린’을 통해 행렬을, 호안 미로의 ‘붉은 태양이 거미를 갉아먹다’에서 원주율(π·파이)의 역사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통해 완전수와 부족수, 과잉수, 소수 등을 설명한다.
마침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30일까지 젊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과 수학의 교감전’이 열리고 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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