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대도 “찰칵” …소극장 ‘폰카와 전쟁’

  • 입력 2005년 6월 29일 03시 16분



“붙들이 어딨노∼ 붙들아∼”

24일 오후 7시 반,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불이 켜지고 마을 이장(里長)이 주인공 ‘붙들이’를 부르며 등장한다. 배우가 등장했는데도 객석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이장의 말에 귀 기울이던 관객은 곧 이유를 알아채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제 우리 동네 전설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야길 잘 들으려면 휴대전화를 꺼야겠지요? 빨리 끄소!”

재차 삼차 전화기를 꺼달라던 이장은 전설 얘기를 끝내고도 여전히 관객이 못 미더운 듯, 또다시 확인한다.

“진짜 다 끄셨지예? 저번에 누가 진동으로 해놨다가 끌려나가뿌따 아닌교. 끄셨으면 잘들 보고 가이소.”

그제서야 객석의 불이 꺼지고, 연극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는 시작됐다.

하지만 과하다 싶었던 배우의 단속도 무색하게, 이날 객석에서는 전화가 네 번이나 울렸다. 한번은 벨소리로, 세 번은 진동으로.

● 유머, 읍소, 협박, 교육….

객석에서 울리는 전화는 극의 흐름을 끊고 감정 몰입을 방해하는 주범. 예민한 배우는 대사를 잊기도 한다. 진동으로 해두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많지만, 무대의 숨소리마저 전달되는 소극장의 경우 ‘부르르’ 소리는 말 그대로 극장 전체에 ‘진동’한다. 더구나 요즘은 동영상 촬영 기능을 겸한 ‘디카폰’이 많아지면서 ‘휴대전화 OFF’는 공연 시작 전 최대 해결 과제로 떠올랐다.

“…공연이 시작되오니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는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식의 고전적 안내로는 더 이상 관객의 주의를 끌 수 없자 각종 아이디어가 속출한다.

앞서 ‘눈 먼 아비…’는 전형적인 ‘퍼포먼스형’. 공연인 양 배우가 등장해 시선을 집중시킨 뒤 휴대전화 전원을 끄라고 요구하는 유형이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유머형’. “휴대전화가 울리면 하던 공연을 멈추고…다 함께 (통화내용을) 들어보도록 하겠다”(뮤지컬 ‘더 씽 어바웃 맨’)거나 “전화벨이 울리면 도중에 ‘주인공’이 바뀌는 불상사가 생긴다”(연극 ‘라이어’) 등이 그 예.

‘황당무계형’도 있다. “이 극장에는 센서가 달려 있어 객석에서 벨이 울리면 바로 머리 위에 조명기가 떨어집니다.”(뮤지컬 ‘달고나’).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하는 ‘호소형’(연극 ‘아트’)부터 주연배우에게 휴대전화 전원을 끄라는 안내 방송을 맡겨 관객들이 귀 기울이게 만드는 ‘스타활용형’(뮤지컬 ‘틱틱붐’)까지 다양하다. 짧은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교육형’(넌버벌 퍼포먼스 ‘도깨비스톰’)도 있다.

드물지만 ‘협박형’도 있다. 연극 ‘아트’는 최근 경북 안동 공연에서 “어제도 전화벨이 많이 울렸는데 오늘도 그러면 공연을 중단하겠다”는 경고로 효과를 봤다.

뮤지컬 ‘헤드윅’은 톱스타 조승우를 디카폰에 담으려는 관객이 많자 “적발시 메모리를 모두 지우겠다”는 경고를 내보냈다. ‘헤드윅’의 스태프 문진애 씨는 “실제로 심하게 찍다가 걸려 메모리를 삭제당한 관객은 매회 2명꼴”이라고 말했다.

● 커튼콜 시간 개방 아이디어도

공연장에서의 무단 촬영은 저작권법 위반. 하지만 인터넷 동호회나 미니 홈피에는 “몰래 찍어왔다”며 올린 공연 사진이나 동영상이 부지기수다.

결국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항상 다른 사람과 연결 가능한 ‘온라인’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다 공연 장면이나 스타의 모습을 찍어 개인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리고 싶다는 과시욕까지 겹쳐 디지털 한국에서의 공연 관람 에티켓은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

그나마 소극장은 제재가 가능하지만 대극장은 현실적으로 전면통제가 불가능하다.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중인 ‘오페라의 유령’은 커튼콜에 한해 촬영을 사실상 눈감아주고 있는 형편. 달라진 환경에 따라 아예 촬영을 허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달고나’의 김종헌 프로듀서는 “차라리 커튼콜을 관객을 위한 서비스 시간으로 개방해 기념 촬영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를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제발 꺼주세요"▼

□ 협박형 "폰카로 찍다 걸리면 메모리 모두 지우겠다"

□ 유머형 "전화벨 울리면 도중에 주인공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 퍼포먼스형 "진짜 다 끄셨지예? 저번에 누가 진동으로 해놨다가 끌려나가뿌다 아닌교. 끄셨으면 잘들 보고 가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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