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했던 천재 철학자 퍼스의 삶과 철학 다룬 연구서 출간

  • 입력 2005년 6월 29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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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다고 알려진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의 창시자 찰스 퍼스는 흔히 알려진 그런 단순한 의미의 실용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응용보다는 기본을 중시한 ‘철학을 위한 철학’이었습니다.”

실용주의로 번역되는 프래그머티즘의 창시자 퍼스(1839∼1914)에 대한 한국 최초의 본격 연구서 ‘퍼스의 미완성체계’(청계출판사)를 펴낸 정해창(59·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퍼스야말로 미국이 낳은 최고의 철학자라고 말했다.

“학문에 관한 한 미국적인 것이 판을 치는 한국에서 가장 미국적인 철학인 프래그머티즘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조로만 알고 있습니다. 철학자들도 영국 경험주의의 아류쯤으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적 사고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일 뿐 아니라 그저 실용주의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심오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 교수는 프래그머티즘의 세 거두인 퍼스, 제임스, 듀이의 철학을 탐색하는 3부작을 펴내면서 그중에서 가장 덜 알려졌지만 가장 심오한 철학자인 퍼스에게 깊이 매료됐다. 사실 가장 미국적인 철학 사조를 창시한 그는 철저히 ‘저주받은 철학자’였다.

퍼스는 하버드대 수석석좌교수로 당대 최고지성으로 대접받던 벤저민 퍼스의 둘째 아들로 15세에 하버드대에 입학할 당시 이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암송할 정도의 천재였다. 대학에서 논리학과 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화학으로 전공을 바꿔 24세에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대학 졸업 당시 그의 지적 수준은 동시대의 웬만한 철학자를 압도했다.

프래그머티즘은 당시 보스턴 최고의 지식인사교클럽이었던 ‘형이상학 클럽’에서 퍼스가 정리한 노트를 하버드대 심리학과와 철학과 교수였던 그의 친구 윌리엄 제임스가 정리한 것이었다. 퍼스가 마르크스였다면 제임스는 엥겔스였던 셈.

“퍼스는 현대판 아리스토텔레스를 꿈꿨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지식의 전 체계를 포괄하려는 야심 찬 기획의 일환으로 기존의 불명료한 형이상학적 개념을 명료하게 하는 의미론적 차원에서 프래그머티즘을 제시했습니다.”

제임스는 이를 유용성과 효용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 진리론으로 바꿨다. 퍼스는 이에 반발해 자신의 사상을 ‘프래그마티시즘’(pragmaticism)으로 재명명했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사상이 현실에서 국가사회주의로 변형되는 것을 보고 ‘내가 아는 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고 강조했던 것과 닮았다.

퍼스는 영재교육의 부작용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학계에서 철저히 따돌림을 받았다. 그는 정식 교수도 못되고 강단에서 쫓겨났으며 생전 단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못했다. 결국 그가 남긴 방대한 유고는 장례비 마련을 위해 단독 500달러에 하버드대에 팔렸고, 1930년대 그 유고 중 일부를 정리한 선집이 나온 뒤 비로소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요즘은 오히려 유럽에서 ‘퍼스학회’가 창립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퍼스가 독일에서 태어났으면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됐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프래그머티즘을 응용을 중시하는 사상으로 오해하지만 사실 프래그머티즘은 철학의 근본을 재정립하려는 사상이었고 인문학과 과학이라는 지식의 전 체계를 종합하려는 거대한 기획이었습니다.”

정 교수는 “프래그머티즘이든 프래그마티시즘이든 그 밑바탕에 흐르는 정신은 ‘학문은 구체적 현실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오늘날 미국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추상적 명분에만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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