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감나무와 시인…박진형

  • 입력 2005년 6월 30일 03시 14분


《감나무와 시인-박 진 형

김형 어디 있노

감나무 위에 있다

뭐 하노

감 딴다

감 따서 뭐 하노

먹는다

먹어서 뭐 하노

시 쓴다

시 써서 뭐 하노

그냥 쓴다

언제 내려오노

안 내려간다

정말 안 내려오나

그래 안 내려간다

바둑 뚜고 싶으면 어쩔래

바둑판 들고 위로 올라온나

나무 베어버린다

그래도 안 내려간다

수천의 알전구 켜둔 감나무

쓱싹쓱싹 베어 버리자

어디로 갔을까, 그는

- 집 ‘너를 숨쉰다’(만인사) 중에서》

쓱싹쓱싹 감나무 밑둥을 베어버려도 내려오지 않는 사람이 시인뿐일까. 마지못해 시켜서 하는 일 아니고, 제 하는 일 천직으로 알고, 제 좋아서 하는 사람은 말릴 수 없다.

목수는 사다리를 걷어가도 두려워 않고, 농부는 아무리 주려도 씨앗베개를 베고 자며, 화가는 캔버스를 앗아가도 철필로 그리지 않던가.

땀 뻘뻘 흘리며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 보면, 감 따먹고 시 쓰는 직업이 젤루 팔자 좋아 보이지만 우지끈 밑둥 베어지도록 불편한 궁둥이 가지 끝에 붙이기도 만만찮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저마다 절대 안 내려갈 만큼 매혹적인 일이 있다면, 얼마나 축복인가.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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