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울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등 6개 지점의 캐주얼 의류업체 ‘지오다노’ 매장에서 한정 판매하는 2250점을 디자인했다. 그의 기성복이 투피스 정장 한 벌에 약 150만 원인 데 비해 이번에 내놓은 의상은 10분의 1 수준이다.
“고가의 디자이너 옷은 구입하기 어렵잖아요. 백화점 의류 매장은 해외 브랜드가 점령했고…. 여성들이 이번 옷들과 함께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지 대표는 SBS TV 드라마 ‘패션 70s’와 가을에 개봉 예정인 영화 ‘청연’의 의상 자문도 맡고 있다. ‘패션 70s’에서 배우 김민정의 1970년대식 굵은 헤어밴드와 볼륨감있는 원피스, ‘청연’에서 국내 최초 여류 비행사 역할을 맡은 배우 장진영의 1920년대식 베레모 등은 그가 재현한 것이다.
○ 캐주얼과 만난 오트 쿠튀르(개인 맞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본점을 비롯해 백화점 6곳에 매장을 둔 지 대표의 기성복은 정장 한 벌에 150만 원 정도이다. 강수연 황신혜 고현정 심은하 이영애 장진영 등 톱스타뿐 아니라 상류층 여성들이 그의 숍을 찾아와 맞춤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번에 내놓은 캐주얼 패션은 티셔츠 6만 원, 스커트와 바지 10만 원, 카디건 12만 원, 운동화 8만 원, 리넨 가방 25만 원이다. 그는 디자인 비용으로 매출의 10%만 받는다.
이번 작업은 현대백화점의 기획, 지 대표의 디자인, 지오다노의 생산 판매를 맡는 협업 체제다. 현대백화점은 상품 차별화를, 지오다노는 상품 고급화로 새 고객을 흡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 대표는 왜 참여했을까.
“변화와 도전은 늘 저를 자극합니다. ‘미스지 컬렉션’의 잠재 고객인 10, 20대에게도 선뜻 다가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 대표는 고급 정장을 디자인하지만 정작 자신은 흰색 스니커즈와 몸에 딱 맞는 청바지 등 캐주얼 차림을 즐긴다.
고가 디자이너 브랜드와 캐주얼 브랜드의 만남은 ‘요지 야마모토’와 ‘퓨마’, ‘콤 데 가르송’과 ‘프레드 페리’ 등 스포츠웨어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말 세계적 브랜드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가 스웨덴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 ‘H&M’과 함께 15유로(2만1000원)짜리 티셔츠를 판매하는 등 확산되는 추세다.
○ 지춘희 스타일
지 대표는 1976년 서울 명동에 ‘지 의상실’을 내고 여성스러운 실루엣의 저지 원피스로 상류층의 인기를 얻었다. 연예계에서 스타일리스트가 전문화되지 않았던 1980년대에는 나영희 강수연 최명길 황신혜 등이 그를 직접 찾아와 드레스를 맞췄다.
1990년대부터는 ‘여명의 눈동자’의 채시라, ‘모래시계’의 고현정, ‘청춘의 덫’의 심은하, ‘불꽃’의 이영애 등이 그의 옷을 입고 TV에 등장했다. 특히 ‘불꽃’에서 대기업 가문의 며느리 역을 연기했던 이영애의 고급스러운 패션은 여성들의 관심을 끌었다. 갈색과 보라색, 회색과 연두색 등 무채색과 톤 다운된 파스텔색을 배합한 투피스 정장이 널리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다.
‘지춘희 스타일’은 면 마 실크 등 자연 소재의 고급 원단에서 비롯된다. 몸매를 지나치게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굴곡을 살린다.
그는 1991년 서울패션협회(SFA) 서울 컬렉션에서 꽃분홍 주황 노랑 등 원색의 A라인 미니 원피스를 선보인 뒤 1995년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 서울 컬렉션에서 스커트에 긴장감을 준 실루엣을 시도했다. 검정 회색 베이지 갈색에 분홍 보라 주황 등을 과감하게 매치했다.
1997년 SFAA 서울 컬렉션에서는 광택이 도는 회색과 갈색으로 슬림한 보디라인을 만들며 엉덩이를 덮는 긴 재킷과 폭넓은 무릎길이 스커트를 소개했다. 최근에는 시폰과 실크 등 하늘거리는 소재를 사용해 부풀린 소매와 레이스 장식으로 로맨틱 분위기를 담고 있다. 올해 ‘미스지 컬렉션’의 인기 상품은 민트색 퍼프 소매의 시폰 블라우스였다.
“옷이 튀면 사람이 가리잖아요. 옷의 디테일보다 전체적인 느낌을 중시합니다. 로맨틱한 옷은 여성들이 일상의 고민을 잊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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