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이연]당당한 싱글, 그녀들이 사는 법

  • 입력 2005년 7월 5일 03시 05분


정말 이상하다.

여자들이 시집을 안 간다고 한다. 언젠가 올드미스라고 불리는 게 싫다고 해서 다른 좋은 말이 뭐가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하이미스라는 말도 있는데…”라는 응답도 있었다. 올드(old)보다는 하이(high)라는 영어가 좋은 의미로 느껴지는가 보다. 하지만 하이미스라는 말은 입에 익숙지 않아 늘 실수하곤 했다.

이제 30, 40대 올드미스가 지천이다. 결혼을 안 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당당한 싱글’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들의 말을 뒷받침하는 징표는 얼마든지 있다. 군색해 보이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우선 수입이 확보되어 있고 행동을 구속할 사람이 없다. 함께 식사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남자친구가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젊어 보인다.

서른을 넘기기는 보통이다. 공부 좀 오래 하다 보면 20대 후반이 되고, 좋은 직장 가지면 그 직장 놓치기 싫고, 일에 재미가 붙어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베테랑이 된다. 그러다가 독립해서 사업주가 되기도 한다.

어찌어찌 나이 40이 가까워지고 그녀의 눈에는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남자가 쉬 보이질 않는다. 아무 남자나 만나 고분고분 말 잘 듣고 모자란 대로 살림을 꾸릴 자신도 없다. 그러기도 싫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자기 자신이 당당하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남자들에게 명령하고 잘 부리면서 살아간다. 요즘은 능력 있는 여성이 직장의 헤드로 존재하기가 편해졌다. 여자니까 불리하다는 핑계를 안 대도 된다.

전에는 집안을 먹여 살리느라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까 혼기를 놓쳐 버리고, 아예 시집 안 가기로 결심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이 불쌍한 여자라고 스스로 주눅이 들어, 시집가서 아이 낳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이젠 전혀 아니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 지갑을 먼저 열고 통 크게 산다.

많은 싱글 여성은 결혼하는 셈치고 집을 사서 독립한다. 아파트가 거추장스러울 땐 원룸 오피스텔을 얻기도 한다. 비교적 완고한 가정에서 자란 여성도 유행병에 걸린 것처럼 잇달아 독립한다. 주위엔 치과의사인 딸이 독립해서 이사하던 날 펑펑 눈물 흘린 아버지도 있다. 다 큰 딸을 간섭할 부모도 없을 텐데도 딸들은 불편하다 느끼나 보다.

휴일에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뒹굴고 싶고, 음악도 듣고 커피도 마시고, 밤엔 혼자서 와인 한잔 하고 가끔 집에 친구들을 불러 떠들며 놀고 싶다는 아주 단순하고 인간적인 욕구도 있을 성싶다. 부모들이 딸의 오피스텔을 방문할 때에는 반드시 전화로 몇 시에 가겠노라고 사전 통고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집이 잘살면 잘사는 만큼 딸을 시집보낼 자리가 더 없다. 3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사주고 100만 원짜리 구두를 신겨서 키웠는데 200만 원 월급 받는 회사원을 사위로 얻으면 어쩌라고….

공부도 많이 시키면 시킬수록 마땅한 사윗감이 없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비싼 바이올린으로 음악공부를 시켰는데 전세 아파트를 겨우 얻는 사위를 얻어 보내려면 켕기기도 하겠지.

원룸 오피스텔에 살지언정 ‘조건 안 맞는’ 결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파워 싱글 여성’이 그래서 더 늘어 가나 보다.

그래도 여전히 이상하다. 나도 여자이고 여권 신장에 찬성하는 사람이지만, 여자의 행복이란 꼭 이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는데….

김이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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