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나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게 했고 따지고 보면 그런 나에 대해 일종의 측은함을 느끼고 건 위로의 전화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행전문기자 10년1개월 만에 진정으로 내 일의 양면을 두루 알아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니 나로서는 주간조선의 인터뷰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동아닷컴의 누리꾼을 위해 몇 자 더 적어 보기로 한다.
사실 ‘최초’라는 표현이나 ‘전문’이라는 수식어는 좀 거북하다. 내 이전에도 여행 분야를 담당한 기자는 있었던 데다가 또 독자들이란 기자를 모두 해당분야의 ‘전문가’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몸담은 동아일보가 나에게 부여한 ‘여행전문기자’라는 직책이 한국 언론사상 처음인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나와 함께 같은 일로 활동하고 있는 많은 기자들도 모두들 이런 타이틀을 받을만한 전문가이며 기자이다. 그러니 처음이니 전문이니 하는 것이 기자사회에서는 사실 계륵과 같은 군더더기다.
그러나 나 스스로만큼은 내게 주어진 ‘전문기자’라는 의미가 입체적이고도 또 상징적이다. 그것은 이렇게 설명해도 될 듯 하다. 내게 ‘전문’이라는 의미는 지난 10년1개월 동안 지구를 100여 바퀴나 돌고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내 집 안방 드나들 듯 돌아다닌 열정에 대한 보답이다. 도 여행이라는 특수한 한 분야만을 전담하는 기자 이전에 세상 모든 것을 뉴스의 재료로 삼는 보통의 ‘기자’로서 여행 취재과정에서 체득한 다양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 새로운 정보가 이제는 이 분야의 전문가를 리드할 만한 수준에 이름을 인정해준 일종의 ‘디플로마’(학위)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내게 이 타이틀은 그 가치를 갖고 이런 타이틀 아래 나는 내가 쓴 글을 독자들이 더더욱 신뢰감 갖고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돼 ‘전문기자’라는 직책을 좋아한다.
내가 여행전문기자라고 밝히면 사람들은 대뜸 이런 것부터 묻는다. 가본 나라가 몇 개국이나 되는지. 당연한 질문이다. 그런데 대답은 늘 미흡해 질문한 사람에게 실망감만 준다. 사실 나는 내가 여행한 곳을 정확히 기억은 하지만 그 숫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약 80개국 쯤 될 것으로 추정한다. 방문국수를 세다 그만둔 지는 벌써 8년이나 된다. 여행을 업처럼 하다보면 그 나라 수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숫자를 센다면 나라 수보다는 도시수가 더 의미 있지 않을 까 싶다. 도시 수는 대략 300여 개를 헤아린다.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키분야인데 스키장은 정확힌 기억한다. 지난 4월까지 전 세계에 104개다.
이 질문에 이어 지는 질문 역시 같다.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호주대륙 북쪽 ‘노던테리토리’의 카카두 국립공원이다. 이곳은 아직도 지구 태초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멋진 곳이다.
사람들은 여행전문기자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이 많다. 여행을 본업으로 하니 얼마나 좋겠느냐, 어떻게 하면 여행전문기자가 될 수 있느냐, 골치 아픈 정치 경제 사회분야 보다 편하지 않느냐 등등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의 저변에는 잘못된 한가지가 있다. 그래서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여행+기자=여행전문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여행전문기자의 본업은 기자다. 여행은 기자의 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내 직업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를 취재를 하는 것이다. 그 취재를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의 즐거움을 취재 중에 느끼기란 쉽지 않다. 물론 즐기려고 노력하지만. 여행 기자를 하면서 잃은 것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여행이 가져다주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사람들은 여행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즐거움을 느낀다. 어디를 갈까, 누구와 갈까, 뭘 할까, 어떤 옷을 입을까, 거기엔 무엇이 있을 까 등등으로. 여행이란 상상만으로도 엔돌핀을 방출시키는 멋진 이벤트다. 그러나 여행기자에게는 다르다. 여행기자는 이미 떠나기 전에 이미 알 것은 다 알아야 한다. 설렘이란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또 출장이 너무 잦다 보니 집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 고역이다. 선친 제사, 추석 설날 등 명절에 호텔 방에서 정한수 받아 놓고 동쪽을 향해 혼자 제배를 올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가방꾸리기다. 짐을 쌌다가 풀었다하는 것으로 설레는 가슴을 달랜다. 내게도 그런 설레 임이 다시 한 번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짐 싸기가 내 일 가운데서 가장 싫다. 만약에 내게 도우미가 제공된다면 제일 먼저 시킬 일이 짐 싸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여행의 묘미란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느끼는 노스탈지아다. 막연한 불안감과 소외감, 거기에 묘한 해방감과 호기심까지 겹쳐 여행지는 환상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여행을 뻔질나게 다니는 여행기자는 그런 감정에 앞서 이 도시의 표정을 어디에 가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네가 취재해야 할 곳을 어떻게 찾아갈 까, 어떤 사진을 촬영해야 할까, 누구를 만나야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까 부터 고민한다. 그러니 여행취재는 여행이 아니라 ‘취재’가 본질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여행기자는 가장 ‘불행한 여행자’다.
만약 내가 여행기자가 아니었다면 어떤 기자가 되었을까. 기약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지금처럼 전문화된 분야의 기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가장 가능성 있는 분야라면 미술이나 연극, 무용 같은 문화 분야다.
그러나 그 어떤 분야를 맡았어도 지금처럼 내 자신을 던져 지금 하는 이 일을 내 자신의 일부처럼 사랑하고 열중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10년 전 나에게 이일을 제안하고 전문기자로서 우뚝 설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던 회사의 미래지향적인 판단과 계획에 감사드린다. 지난 10년간의 노력 끝에 나는 지금 내 일과 더불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불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내일 당장 그만두더라도 후회가 없을 만큼.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도 늘 이렇게 말한다. 네 인생의 꿈은 네가 시간과 돈과 정열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면 좋겠다고. 이 아빠처럼.
그러나 어떤 일이던 그 끝은 있는 법. 내게도 언젠가는 리타이어(은퇴)라는 매듭을 지을 시기가 올 것이다. 아직 그 시기를 생각해 본적은 없다. 욕심 같아서는 65세까지 일하고 싶지만 글쎄 회사가 기회를 줄는지.
은퇴를 계획한 적이 없다는 것은 은퇴가 내 인생의 축을 바꾸는 그런 중요한 의미가 되지 못할 것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말은 은퇴 후에도 ‘트래블 라이터’라는 내 삶에는 변화가 없을 듯하다는 것이다. 은퇴시기를 정하지는 않았어도 현역기자를 그만둔 이후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벌써 오래 전부터 생각해두었다. 그 리타이어플랜의 골자는 역시 ‘여행기자’다. 그때가 되면 소속되지 않을 테니 ‘프리랜서 트래블 라이터’라고 부르면 좋을 듯 하다. 그러면 마감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구독자 취향이 아닌 내취향의 기사를 쓸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리고 그 때 쓸 글은 지금과 조금 다를 것이다. 나는 앞으로 어린이와 10대를 겨냥한 여행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을 통해 미래의 꿈과 희망을 키우고 간직할 수 있는 그런 여행 글을 쓰고 싶다.
그런 내 리타이어 라이프의 핵심은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한국에는 작은 거처만 남겨두고 여행을 직업처럼 하는 남편덕분에 집지킴이 하느라 평생 방구들 지킨 안사람과 함께 평생 동안 눈여겨 보아둔 멋진 곳을 찾아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한 두 해씩 머물면서 멋진 노년의 삶을 꾸릴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내가 거주한 곳에 주변의 지기를 불러 함께 머물며 와인도 마시고 골프도 치고 여행도 하면서 지낼 작정이다. 그러면서 그 곳을 취재해 매년 한 권씩 책을 써내려고 한다.
이 계획을 위해 나는 이미 여러해 전에 재무 포트폴리오까지 완성해 두었다. 65세 이후에는 이런 생활을 하는데 경제적 어려움이 없도록 그만한 수입이 정기적으로 들어오도록 개인연금과 보장성보험 등에 가입해 두었다.
여행전문기자도 여행을 갈까? 사람들은 내가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여행기자가 무슨 여행이냐고 한다. 늘 하는 일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여행기자가 ‘여행+기자’가 아님을 앞서 밝혔다. 내게 여행은 오직 ‘가족’과 함께 할 때 뿐이다. 가족을 동반 않는 여행은 몽땅 일이다.
1년에 한 차례정도 떠나는 가족여행에 나는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은 절대 데려가지 않는다. 가족여행은 최우선은 안전이고 나는 그 안전을 지켜야 할 첨단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곳만 찾는다. 그 가족여행에는 절대 수첩과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물론 비상사태를 위해 휴대는 하지만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여행 중에 촬영한 사진이 거의 없다.
여행을 전공하다보니 집안 행사도 여행 컨셉으로 치를 때가 있다. 지난 해 여름 어머님 칠순연이 그렇다. 호텔식당이나 뷔페에서 손님을 치르는 평범한 행사는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하다가 어머님을 위한 1박2일 여행을 기획했다. 29인승 딜럭스 관광버스를 한 대 빌려 어머님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친구 분들 10명을 초청, 가족과 함께 단 26명만이 단출하게 이 버스를 타고 떠났다. 전주 한정식 집에서 칠순 연을 겸한 저녁식사를 하고 전주한옥마을의 체험관내 별채를 통째로 빌려 대청마루에서 뒷 풀이도 하고 숙박했다. 이튿날은 전주한옥마을과 근처 온천을 들렀고 오후에는 전주비빔밥을 먹고 변산반도에 들러 바닷바람 쐬고 생선회 맛을 본 뒤 상경하는 일정이었다. 초대받으신 분 모두가 지금도 두고두고 이야기 할 만큼 좋았다는 평을 받았다.
사람들의 여행방식에 대해 할 말이 좀 있다. 지금까지는 막힌 봇물 터지듯이 너도나도 앞뒤 가리지 않고 남이 가는 곳을 따라가듯 특정한 몇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추세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나를 위한 여행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생 수십차례의 여행을 떠날 수 있을 테니 매차례 여행을 시간허비로 남기지 말고 뭔가 소득이 있는 인생의 작품으로 만들어 봄이 어떨까 하는 제안이다.
큰 줄기를 더듬자면 내 여행의 주제를 정하라는 것이다. 여행을 여기저기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중구난방 다닌다는 것은 좀 아깝지 않느냐는 것이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아닌가. 내가 평생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찾고 연구할 만한 주제를 하나쯤 정하고 사는 것은 풍요로운 인생의 받침돌이 된다. 여행도 그 주제를 따르면 더욱 좋을 듯 하다. 내 경우 스키를 좋아하다보니 어떤 경우에도 스키와 관련을 짓게 된다. 그러다 보니 10년 동안 무려 104곳의 스키리조트를 갈 수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일 듯 하다.
나는 최근 아프리카를 자주 다녀왔다. 아다시피 지구에 여섯 개의 대륙이 있지만 그나마 우리에게 덜 알려진 곳이 이곳이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에 관심을 둔 것은 이 곳이 우리 인류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모든 아프리카 동물의 서식지가 이 살기 좋은 아프리카 고원의 사반나인데 인류 역시 여기서 태어났다. 특히 피부빛깔로 인한 갈등으로 금이 간 지구촌에서 이런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갈등의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인류의 근원은 검은 피부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프리카는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앞으로 나의 여행기는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을 주제로 삼을 것이다. 물론 가장 살고 싶은 나라는 우리나라다. 그러나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을 고르라는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라밖에서 찾게 될 텐데 그런 곳으로 어디가 좋을까하고 나는 수시로 생각한다.
가만히 생각해도 열 손가락으로는 모자른다. 우선 호주 대륙 서편의 웨스트 오스트랄리아 주의 퍼스(Perth)가 그중 하나다. 인도양 바다와 맞닿은 해안의 멋진 풍경과 흑조와 펠리컨이 노니는 스완 리버를 세일 보트가 뒤덮는 장관, 그리고 멋진 와이너리의 잔디밭에서 펼쳐지는 야외 클래식공연을 와인 홀짝이며 감상할 수 있는 여유만점의 도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단 인도양변의 나이스나(가든 루트의 중심지 조지 근방)라는 해변마을도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매년 겨울이면 블루 오이스터라는 굴이 풍성하게 나와 축제가 펼쳐지고 고래가 노니는 바다가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멋진 곳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한 보름쯤 지내면서 낮에는 골프치고 저녁에서는 워터프론트에서 블루오이스터를 와이트와인 곁들여 마시면서 인생한담을 나누고픈 그런 곳이다.
한국에서 고향을 떠난다면, 글쎄. 개인적으로 울릉도를 좋아한다. 방파제에 앉아 오징어 내장 끼운 낚시 드리우면 전갱이가 어떤 때는 쉬지도 않고 물리는 특별한 경험도 하게 된다. 일단 도동 외곽으로 나가면 조용해서 좋다. 어디를 쳐다봐도 바다고 아무리 둘러봐도 오염된 곳이 없는 청정 섬이어서 나는 좋아한다. 한두 달 쯤 낚시나 하며 지내기에 이만한 곳이 없을 듯 하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동아일보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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