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고풍의 춤곡과 아리아’

  • 입력 2005년 7월 6일 03시 04분


‘음악사에 헨델이 남긴 업적은?’

1970년대에는 이런 고전적인 음악 시험문제에 ‘바흐와 결혼했다’고 답을 적어냈다가 꾸지람을 들은 학생이 꽤 많았다고 전해진다. 교과서에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이라고 적혀 있었으니 무리는 아니었을 듯하다.

그 표현이 암시하는 것처럼 바흐와 헨델 두 사람이 서양 음악의 모든 기초를 닦았을 리는 없다. 단지 1960, 70년대까지도 ‘일반인이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은 18세기 초 바흐 헨델 이후’라는 관념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전부였을까. 이탈리아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는 조국 이탈리아의 시민들이 오페라에만 열광하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바로크 시대에는 기악 분야도 이탈리아가 장악하지 않았던가’라고 생각한 그는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교수로 취임한 뒤 도서관을 뒤져 먼지를 털어내며 옛 악보를 읽는 일에 열중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의 바로크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악보도 섭렵했다.

그는 이렇게 찾아낸 옛 악보를 편곡해서 ‘류트를 위한 고풍의 춤곡과 아리아’ 모음곡집, 관현악 모음곡 ‘새(鳥)’ 등을 발표했다. 바로크 이전 음악에 친숙하지 않은 동시대 청중이 쉽게 옛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옛 음악에 양념을 쳐서 말랑말랑하게 구워냈던 것이다.

그는 선각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1952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의 후배 음악가들이 ‘이 무지치’라는 실내악단을 조직했다. 1959년 이들이 녹음 발매한 비발디의 협주곡 ‘사계절’은 전 세계에서 수백만 장이 팔려나가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편곡할 필요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바로크 음악이 세계인의 음악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한 것이다. 레스피기의 ‘선각(先覺)’은 선각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어느 정도는 뒤늦게 쫓아간 만각(晩覺)이었던 것일까.

그러나 레스피기가 ‘현대인들의 감각에 적합할 것’으로 예상하고 편곡했던 옛 음악도 나름대로의 상큼한 정취를 풍긴다. 요즘 같은 초여름, 빗살 사이사이로 상쾌한 햇빛이 비치는 순간에 그의 음악을 듣는 느낌은 각별하다. 다가오는 그의 생일(7월 9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우선 앞서 소개한 ‘고풍의 춤곡과 아리아’ 3번 모음곡을 들어 보시기를 권한다. 지중해변, 절벽 위에 빛나는 자그마한 백악(白堊)의 집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여유로운 상상도 품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휴가철이니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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