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박물관, 382년 제작 아도화상 묘지함 추정 유물 공개

  • 입력 2005년 7월 7일 03시 09분


한국 불교사를 다시 써야할 유물인가, 아니면 희대의 위조품인가.

한국토지공사에서 운영하는 토지박물관은 6일 고구려와 신라에 불교를 전한 승려로 알려진 아도(阿道 혹은 我道)화상의 무덤에 보관돼 있던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묘지함(추모의 글을 새겨 묘에 넣는 작은 상자)을 공개했다.

1930년대 한 개인이 만주에서 입수해 후손들이 보관해왔다는 이 묘지함에는 진품으로 확인될 경우 한국불교사를 다시 써야할 만한 중요한 내용들이 새겨져 있다.

고운 진흙을 산화염으로 구워 만든 이 묘지함(가로 20.5cm, 세로 16cm, 높이 14cm)의 뚜껑에는 ‘아장승(阿丈僧)의 열반을 기념해 무덤을 쌓고 봉한다(阿丈僧涅槃築封)’는 내용과 함께 제작 연도와 제작 장소가 적혀있다.


한국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의 묘에 들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묘비함과 뚜껑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12장의 점토판(왼쪽). 뚜껑에 쓰인 글씨 오른쪽 첫째 줄에 진태원병자칠년(晉太元丙子七年), 둘째 줄에 국견내성 초문사(國甄內城 肖門寺)라는 한자가 뚜렷하다. 신원건 기자

제작 연도는 진태원병자칠년(晉太元丙子七年)으로 이는 382년(고구려 소수림왕 12년)에 해당한다. 제작 장소는 국견내성(國甄內城)의 초문사(肖門寺)로 돼있다.

아장승은 아도로 추정되며, 국견내성은 고구려 국내성(현 중국 지린 성 지안)의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초문사는 이불란사와 함께 375년 고구려에 최초로 세워진 2개의 사찰 중 하나다.

함 안에는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과정과 아장승의 활약을 새긴 뒤 고온으로 구운 얇은 점토판이 6장씩 두 줄로 들어가 있다. 뚜껑과 점토판을 합쳐 모두 493자가 기록돼 있는데 내용 중에는 ‘태녕(太寧) 3년(325년) 나라에 불법(佛法)이 성행하고, 불도를 숭상해 군중이 모여들었다’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면 고구려에 불교를 처음 전한 것은 순도(順道)이며, 2년 뒤 아도가 입국했다. 만약 묘지함이 진품일 경우 우선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가 소수림왕 2년(372년) 보다 50여 년 이상 앞서게 된다. 또 이 묘지함 양면에 새겨진 불상은 지금까지 발견된 국내 불상 중 가장 오래된 불상이 된다.

정영호 단국대 명예교수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도 2차 자료지만 이 묘지함은 1차 자료라는 점에서 한국 불교사를 바꿀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진품일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우선 이런 도기 형태로 묘비 기록을 남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데다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또 얼마 전 역시 위조 논란이 됐던 ‘동천왕십일년명 벽비’와 마찬가지로 점토판에 글을 새긴 형태이며, 간자체(簡字體)가 고대에도 쓰였다 하더라도 벽비에 이어 연속 등장한 점도 의혹을 낳고 있다.

하지만 진품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의견도 많다.

토지박물관의 심광주 학예실장은 “고구려는 붉은색을 좋아해 신라, 백제와 달리 도기를 구울 때 공기를 주입해 일부러 붉은색을 냈는데 이 묘지함은 그런 방식으로 제작됐다”며 “무덤 내부의 석회수에 장시간 잠겨있는 바람에 오랜 세월에 걸쳐 암갈색으로 변한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된다”고 말했다.

금석문 전문가인 손환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체는 전반적으로 광개토왕비문의 서체와 같은 한대(漢代)의 예서체로, 예를 들자면 ‘口’를 쓸 때 요즘과는 다르게 ‘ㄱ’을 먼저 쓰고 ‘ㄴ’을 나중에 썼고 고대 간자체를 쓰는 등 고서체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면 모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단국대 정 명예교수도 “위작이 되려면 모방할 전례가 있어야 하는데 이 묘지함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진위 논란이 뜨거워짐에 따라 토지박물관 측은 조만간 진품 여부를 가리기 위한 열형광(TL)분석을 실시할 예정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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