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서울 특급호텔 여성 조리장 3인이 말하는 요리사 세계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12분


서울 특급호텔에서 근무하는 여성 조리장 세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메이필드호텔 한식당 봉래정의 이금희,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양식당 테이블34 리사 나카무라, 롯데호텔서울 와인레스토랑 바인의 로빈 쿠퍼 씨. 강병기 기자
서울 특급호텔에서 근무하는 여성 조리장 세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메이필드호텔 한식당 봉래정의 이금희,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양식당 테이블34 리사 나카무라, 롯데호텔서울 와인레스토랑 바인의 로빈 쿠퍼 씨. 강병기 기자
《여성 조리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한 업장을 책임지는 조리장을 여성이 맡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서울 특급 호텔의 여성 조리장은 4명에 불과하다. 이 중 메이필드호텔 한식당 봉래정 이금희(40),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양식당 테이블 34 리사 나카무라(40), 롯데호텔 서울 와인 레스토랑 바인 로빈 쿠퍼(35) 씨에게서 여성 조리장의 세계를 들었다.》

○눈물이 성장의 동력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호주에서도 여성 조리장은 많지 않다. 주방의 근무 환경이 힘들고 차별도 심해 여성 조리사들이 1∼2년 사이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나카무라 조리장의 조리 학교 여자 동기 10여 명 중 요리사가 된 이는 불과 3명. 이금희 조리장은 “남자 동기보다 10년이나 승진이 늦는 친구도 봤다”고 전했다. 한국 양식당의 핫(hot) 파트에서는 불과 팬을 다루기 힘들다는 편견 때문에 여성 조리사들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이 조리장이 한식을 택한 것도 상대적으로 남자들의 지원이 적기 때문.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하지 않았다. 선배들이 1년 동안 달걀지단 부치기와 반찬담는 일만 시켰다. 하도 젓가락질을 많이 해 손가락에 못이 박였을 정도다.

“워낙 많이 울다 보니 선배들이 눈물을 모아 보라고 병을 갖다 주기도 했어요. 여자 동기 중 한 사람은 1년도 안 돼 그만두고 시집갔죠.”

정신없이 바쁘고 위험한 일이 많은 주방에서 주방장들에게 상스러운 욕을 먹는 경우도 많다. 쿠퍼 조리장은 “생리 때마다 징징 짤 것 같으면 당장 나가라”는 말을 수없이 하던 상사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손맛’은 여성이 앞서

주방에서 20kg짜리 밀가루 포대를 옮기는 데는 남성 조리사가 낫겠지만 요리에선 여자들이 밀릴 이유가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오히려 섬세한 요리 과정에서는 여자들이 더 낫다는 것이다. 잣에 바늘로 구멍을 내 솔잎을 끼우는 작업에서 여자들은 차분하게 하는 반면 남자들은 “눈 튀어나오겠다”며 못 참는다. ‘손맛’이 중요한 반찬 김치 장류의 맛을 내는 데도 여자들의 섬세함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고 한다. 쿠퍼 조리장도 같은 이유로 파티시에(제과장) 같은 분야는 여자들이 더 어울린다고 말한다.

나카무라 조리장은 요리를 대하는 태도가 남녀별로 다르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먹는 사람의 느낌을 먼저 생각하지만, 남자들은 자신의 느낌을 앞세운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요리를 ‘대접하는 것’으로, 남자들은 ‘자신이 창조한 작품’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나카무라 조리장은 “옛날부터 여자들이 가족을 위해 요리해 온 기질이 유전자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믿을 것은 실력 뿐

쿠퍼 조리장은 “초기에 후배가 잘못하면 욕을 하거나 기물을 던지기도 했지만 내 기분은 물론이고 주방 분위기만 엉망으로 만들 뿐”이라며 “서로 존중하고 후배의 능력을 믿어주는 게 효율적인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식 회식도 즐기며 소주에 삼겹살도 자주 먹는다.

나카무라 조리장은 주방에서 노래를 흥얼대고 춤을 추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일터는 즐겁고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이 조리장은 틈만 나면 조리사들을 데리고 외부 레스토랑으로 벤치 마킹을 다닌다. 조금이라도 공부해두는 게 앞서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세 조리장은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기가 하나라도 없으면 동료나 후배에게 존경받기 어렵고, 여자들은 남자보다 더 주목받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카무라 조리장은 후배 조리사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절대로 남자가 당신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말라. 절대 No라고 말하지 말라.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져라.”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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