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감동과 재미가 있는 뮤지컬을 보고 싶다. ②한국 창작 뮤지컬의 가장 큰 문제는 창작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③창작 뮤지컬은 무겁고 지루하거나, 아니면 가볍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④ ‘막심 고리키’라는 극작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재미없겠다’는 생각부터 떠오른다. ⑤연극과 뮤지컬을 통틀어 요즘 볼 만한 작품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해당된다면 창작 뮤지컬 ‘밑바닥에서’를 권한다. ‘밑바닥에서’는 창작뮤지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좋은 작품은 관객을 부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유명한 스타도 없고, 결코 쾌적하다고 할 수 없는 160여 석짜리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작품이지만 입소문만으로 꾸준히 관객을 모으면서 최근 연장 공연을 시작했다.
‘어머니’로 유명한 러시아 극작가 막심 고리키의 동명의 희곡이 원작. 원작의 무대였던 침침한 지하실을 왁자지껄한 선술집으로 바꾸고, 원작에서는 19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도 11명으로 압축했다. 매춘부, 알코올 중독자인 무명 배우, 사기 도박단, 불치병을 앓는 술집 주인 딸 등 자칫 무겁게 가라앉기 쉬운 희망 없는 밑바닥 인생의 이야기를 12곡의 빼어난 창작 음악(박용전)과 적당한 웃음으로 버무려낸 깔끔한 각색과 연출(왕용범)이 돋보인다.
밑바닥 삶의 유일한 장점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것!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품는 순간, 그나마 유일했던 장점은 사라진다. 병이 나을 거라는 희망, 다시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희망, 교도소 인생을 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희망, 매춘부에게도 진실한 사랑이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
극 후반부, 내내 침묵하던 무명배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며 열창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 밑바닥 인생에 깃든 마지막 희망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객석은 뜨거운 환호와 함께 열광한다. 하지만 무명배우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한줄기 빛처럼 사라져 버린 희망이다. ‘희망이 독이 되는’ 삶의 비극성에 대해 곱씹어 보게 만드는 작품. 8월 21일까지. 예술극장 나무와 물. 1만2000원∼2만5000원. 02-745-212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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