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미국서 출간됐을 때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올해의 책’으로 뽑았으며, 미국 중학 교과과정 필독서로 선정된 화제의 책이다. 국내에선 올 상반기 ‘요코 이야기’(문학동네)란 제목으로 뒤늦게 번역됐으나 초판이 소화된 데 그쳤다.
책의 저자는 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일본 여성 요코 가와시마 잡킨스(72)씨. 자신의 체험담을 소설로 만든 이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본보는 요코 씨와 이 책을 번역한 재미 번역가 윤현주(42) 씨의 대담을 마련해, 60년 전 한국에서의 경험이 요코 씨의 삶에 미친 영향, 최근의 한일 관계에 대한 소회 등을 들어봤다. 대담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캇에 있는 요코 씨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윤현주=뒷마당에 대나무들이 참 좋군요. 책 제목도 ‘So Far From The Bamboo Grove’였지요.
▽요코=나남(청진시를 흐르는 나북천의 남서쪽 지역)의 집 뒤 대숲이 생각나서 심었습니다. 거기 살 때가 제 일생에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지요.
▽윤=‘요코 이야기’는 얼마나 사실인가요?
▽요코=1945년 8월 당시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피란 나온 오빠가 쓰러지자 북한 지역의 김 씨 아저씨가 구해주는 내용이 나오지요. 김 씨 아저씨 가족 이름은 가명입니다. 책에서는 오빠가 이듬해 한국에서 빠져 나오지만, 실제는 3년 후지요. 이 점들만 빼면 모두 사실입니다.
▽윤=당시 경험을 소설 속에 모두 담았나요?
▽요코=히로시마에서 본 원자폭탄 피해자들 이야기는 도저히 쓸 수가 없더군요. 불에 탄 아기를 안고 물 좀 달라던 여인이 생각납니다. 아기 몸은 벌써 구더기 떼로 들끓고 있었지요. 끔찍했습니다. 저는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서 생긴 일들을 미국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일본도 제국주의를 통해 한국 중국 등에 큰 고통을 준 사실을 역사 교과서에서 정직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일본계를 모두 수용소에 가뒀지만 최근 사과하고 위로금을 주었지요. 일본 정부가 자기 잘못에 대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사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창피한 거지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요.
▽윤=‘요코 이야기’가 한국에서 출간되니까 아직 일본은 그런 사과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가 일본인들의 고생담을 들어야 하는가 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요코=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일 관계를 떠나 제가 소녀 시절 겪고 느낀 어려웠던 일들을 솔직히 써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국을 제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을 괴롭힌 것은 일본 정부와 군인들이었지요. 일본의 보통 사람들도 일본 군인들로부터 괴로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때는 군인들 세상이었지요. 하지만 평화는 정부나 군인들이 가져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 개개인이 서로 이해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윤=저도 일본 정부나 군부와 일본인 개인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을 읽으니 감동을 받았지요. 나남에 살던 때 한국인에 관한 기억으로는 어떤 게 있나요?
▽요코=그때 일본군은 훈련장으로 쓴다면서 한국 사람들 땅을 뺏었습니다. ‘요코 이야기’에 나오는 이 씨 아저씨의 논밭도 뺏었지요. 아버지는 위로 삼아 이 씨 아저씨네가 밭농사 짓는 걸 가르쳐 주는 대가로 매달 얼마씩 주셨지요. 우리가 일본으로 갈 때는 우리 땅과 집을 이 씨 아저씨한테 준다는 서류를 만들었습니다(반전(反戰) 입장이던 요코 씨의 아버지는 한때 일제에 의해 정치범으로 투옥됐던 적도 있다고 한다).
▽윤=꼭 60년 전의 일인데요. 지금 회상하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요코=저는 어린 시절에 뜻하지 않게 전쟁을 겪었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난장판에 힘없이 던져진 거지요. 세상을 끔찍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나쁜 어른들’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빛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고요.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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