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세상을 떠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 씨의 전 부인 줄리아(82) 여사. 올 4월 말 내한해 서울 강남 모처에 머물고 있는 줄리아 여사는 이 씨가 일본의 한 호텔방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 말을 되뇌듯 반복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줄리아 여사는 자신의 삶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의 시나리오 작가 및 PD와 함께 요즘 하루 2∼3시간씩 남편과 나눈 영욕이 교차했던 세월들을 회상해 들려주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도 이 씨를 그의 영문 이름(Ku Lee)인 ‘쿠(Ku)’라고 부르는 줄리아 여사는 “쿠를 꼭 한번 다시 만나 ‘당신 (나와 헤어진) 그동안 행복했나요, 안 행복했나요?’라고 물어보는 게 내가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었는데…”라며 “여덟 살 아래인 쿠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줄리아 여사는 ‘아이를 못 낳는다’며 이혼을 종용하는 종친들에 밀려 1982년 이혼서류에 서명했으나 최근까지도 줄곧 “남편을 너무 사랑해 왔다.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 이 씨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어떻게 선을 대야 할지 몰라 소재 파악을 하지 못한 채 마음고생만 해 왔다고 한다.
현재 휠체어에 의지해 거동할 정도로 불편한 몸이지만, 이 씨와 자신이 모두 건축 디자이너였던 시절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 아이엠페이의 건축사무실에서 처음 마주쳤던 순간부터 남편과의 헤어짐까지를 마치 일기를 읽듯 조목조목 회상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쿠를 처음 만났을 때는 지적인 중국인인 줄로만 알았어요. 하지만 그가 자신을 ‘대한제국의 왕자’라고 당당하게 소개해 아시아에 대한제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됐죠.”
영화사 관계자는 “줄리아 여사가 ‘남편의 장례식에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하겠다’고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을 소재로 한 영화 ‘마지막 황세자비’(가칭)는 현재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 중이며, 미국 할리우드의 스타급 배우와 감독을 기용해 내년 하반기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시신 창덕궁 낙선재 안치… 24일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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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에서 올라온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義親王)의 아들인 이석(李錫) 씨는 “늘 과묵했던 이구 전하는 영락없는 왕가의 후손이었다”며 “우리 정부가 좀 더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이렇게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고인의 시신을 운구해온 이환의(李桓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은 “고인이 자신의 후계자를 지목해 사인까지 한 문서를 갖고 왔다”며 “후계자를 사후 양자로 입적해 대를 잇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후계자는 의친왕의 손자로 현재 한 케이블 방송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이모 씨로 알려졌다.
조문은 23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영결식은 24일 창덕궁 희정당(熙政堂) 앞.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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