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일주/0613~15]"너무 깨끗한 계곡물 뛰어들고파…"

  • 입력 2005년 7월 22일 18시 13분


자전거 유럽 여행(6월13일) : Linz-Lambach 이동거리 : 60km

며칠 전 이야기했던 동원이 자전거를 수리하기 위해 린쯔 시내로 들어갔다. 15kg이 넘는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동원이가 무척 힘들기 때문에 무엇보다 급한 일이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자전거 가게를 찾고 수리를 할 수 있었다. 수리하는 동안 한국에 보낼 우편물도 보내고 저녁거리도 사다 보니 1시가 넘은 시간에야 출발 할 수 있었다.

'자전거로 유럽일주' 사진
'자전거로 유럽일주' 동영상

늦은 시간에 출발을 해서 조금 서둘러 가려는 찰라.

수리한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동원이 자전거의 스포크가 또 다시 부러진다.

우리의 짐이 무거운 것인지 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다들 무척이나 황당한 표정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고 다시 자전거 수리를 위해 린쯔 시내로 돌아갔다.

큰맘 먹고 바퀴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2시가 넘은 시간에 다시 출발.

평소보다 무척 늦은 시간에 출발을 했기 때문에 얼마 못 가 저녁시간이 됐다.

어차피 짤츠부르크까지 하루에 갈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정상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당장 오늘 잘 캠핑장을 찾기가 어렵다. 지도에 나와 있는 캠핑장은 아직도 한참이 남았기에 어쩔 수 없이 노숙을 결정, 잠잘 곳을 찾았다. 지난 번 프랑스에서 신부님집에서 머문 이후 그렇다 할 행운이 없었기에 오늘만큼은 행운을 바라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늘을 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인 게 다들 마음이 급하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다.

그냥 안면몰수 하고 아무 집에나 들어가 하루 밤만 재워달라고 하고 싶지만 아직 여행 내공이 부족한 탓인지 아무도 선뜻 말을 걸지 못한다.

모든 상황을 체념하고 있을 때쯤.

인상 좋은 한 아저씨가 다가온다.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급한 목소리로 원제가 말을 건넨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무거운 짐을 잔뜩 실은 우리를 보고 생각보다 훨씬 호의적으로 앞마당을 내준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우리에게 식탁과 의자를 내어주며 마실 물과 음료수까지 준다.

아저씨 역시 자전거로 유럽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니신단다. 고장을 일으킬 때 빼고는 이번 여행에서 자전거는 우리에게 최대의 무기이다.

다들 예상하지 못한 호의에 무척이나 기뻐하며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한참 저녁을 먹고 있는 순간.

차고 문이 열리면서 우리 또래의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인사를 건넨다. 당황하지 않으려 했지만 씻지도 않은 모습으로 밥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다가와 앉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 아저씨의 딸 슈탕글(Stangl)과 그녀의 남자친구 토마스(Thomas).

저녁 먹을 때 갑자기 다가와 맥주를 마시자는 그녀가 조금 당황스럽지만 모처럼 아름다운 아가씨의 제안이 나쁘지는 않다.

초반의 서먹함도 잠시.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어느덧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슈탕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자동차 엔진회사에 다니고 있고 그녀의 남자친구 토마스는 한 살 연하로 고등학교 졸업반에 다니고 있단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들의 개방적인 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집에서 자고 간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조금 놀랐다. 한국에선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이 이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서로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문화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조금은 자세히 서로의 나라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조심스레 독도 이야기를 하며 준비해간 유인물을 보여주자 우리와 같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며 우리의 입장을 무척이나 공감한다.

적당히 이야기 하다 마치려던 자리는 1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다들 피곤했지만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보낸 시간이 무척 좋았다.

자전거 유럽 여행 (6월14일) : Lambach-Gmunden-Fuschl 이동거리 : 100km

어젯밤 언제 비가 그렇게 왔었냐는 듯 아침햇살이 따사롭다.

아저씨 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잘 수가 없어 서둘러 짐을 꾸려 떠날 준비를 한다. 아저씨는 떠나는 순간까지 마실 것을 챙겨주시고 짤츠부르크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시며 우리를 걱정해 주신다. 길을 떠나며 “고맙다! 고맙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마음속에 고마움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Gmunden에 도착하니 Traunsee(호수)가 우리를 반긴다.

알프스 산맥 가까이에 온 것이 실감이 나는 듯 하다. 바닥까지 보이는 투명한 호수와 산꼭대기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유럽에 와서 지금까지 본 광경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길가 가판대에서 파는 사과를 사 먹으며 이곳의 모습을 가슴 깊이 새겨 넣는다. 경치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다.

Traun 강을 따라 짤츠부르크로 향한다.

산길을 따라 계곡을 따라 아름다운 모습들이 계속 이어져 힘든 줄 모르고 달린다.

계곡물은 너무나 깨끗해서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한 모금 마시고 싶을 정도다.

자전거 유럽 여행(6월15일) : Salzburg 이동거리 : 50km

여행을 하며 참 많은 사람을 만난다.

며칠 전 우리에게 마당을 내주었던 아저씨의 가족들, 그리고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한 알렉산더도 그렇고. 물론 여행을 하는 많은 한국 사람들도 만난다.

오늘은 이곳 짤츠부르크에서 군대 동기 녀석을 만났다. 군대에 있을 때 사이가 썩 좋지 않았었는데 이 먼 곳에서 만나니 그저 반가움뿐이다.

또한 오늘 아침에 짤츠부르크로 오는 길에 우리 옆에 버스 한대가 섰다.

버스 안을 바라보니 아마도 한국 단체 관광객들 같다. 그분들도 우리 가방에 붙어있는 태극기를 보고는 신기한지 다들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마치 유명 연예인처럼 이분들에게 둘러싸여 우리의 여행 계획을 말씀드리니 젊은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다.

특히나 우리에게 부모님 같으신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를 보면 자식 생각이 나서인지 먹을 것도 챙겨주시고, 용돈도 주시며 무척 잘 해주신다.

여행에 한참인 지금 가끔 부모님 생각이 날 때 이분들을 만나면 마치 부모님을 만난 것 같아 우리 또한 무척 반갑고 감사하다.

오늘 우리가 관광하는 짤츠부르크는 영화 'The Sound of Music'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영화의 주인공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이 사랑을 이야기하던 곳과 마리아와 아이들이 뛰놀며 노래를 부르던 그 곳. 영화를 한번 더 보고 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짤츠부르크 시내를 나왔지만 다행히도 오늘 묵을 캠핑장에서 영화를 상영해 준다. 이미 봤던 영화지만 영화 속의 장소들을 보며 우리가 들렸던 곳을 되새겨 보니 무척이나 흥미롭다.

혹시나 이곳 짤츠부르크를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영화 'The Sound of Music'을 보고 왔으면 한다. 어떤 여행안내서보다도 훌륭한 안내가 될 것 같다.

빈을 거쳐 린쯔, 이곳 짤츠부르크를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 여행이 끝이 났다.

다시 독일 남부 뭔헨과 휘센을 향해 열심히 자전거 패달을 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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