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서울예고 입학식 날, 버스정류장에서 첫눈에 반한 동갑내기이자 고교동창 손혜경 씨와 10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그녀의 집 가까이 살고 싶어 ‘하숙방’을 옮기면서까지 끊임없는 순정을 표현했다. 첫사랑이 평생 사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문데 내 진심이 받아들여졌는지 나의 경우는 행복하게도 예외가 되었다.”
이 교수는 생전의 아내가 절친한 친구이자 예술혼을 자극해 준 예술가적 동지였으며 엄격한 비평가였고, 생활고를 잘 견뎌 준 당차고 대범한 버팀목이었다고 회상한다.
“조교 마지막 학기 시절, 예기치 않은 오해 때문에 그만두고 와서는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아내는 오히려 ‘잘됐다, 이제 작품만 하면 된다’고 격려해 줬다.”
그런 아내가 덜컥 암에 걸렸을 때, 경북 영주의 소백산맥 산골 마을 사진관 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노력과 열정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던 이 중년의 사내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다”고 한다.
‘아내는 나와 열여섯에 만나 스물여섯 살에 결혼하고 쉰여섯 살에 헤어졌다. 아내는 10년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나와 살며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한 번쯤 부부 전시회를 가졌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렇게 못한 것이 지금도 내내 후회가 된다.’
이 교수는 “아내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의연했다”면서 “‘마누라가 아프다는 게 소문나면 안 좋다’며 저녁모임도 부지런히 참석하고 그림도 더 열심히 그리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허문명 기자 ang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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