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개봉하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 씨’에서 금자(이영애)의 감방 동기들은 출소한 금자를 처음 만나 다들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는 자신의 복수 3부작 중 앞선 두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와 그 완결편인 ‘친절한 금자 씨’는 달라야 한다는 박 감독의 자기암시처럼 들리기도 한다.
금자는 철모르던 열아홉 살에 알게 된 백 선생(최민식)의 협박으로 어린이 유괴살인범이 돼 1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교도소에서 ‘누구에게나 친절한 금자 씨’이지만 동시에 ‘마녀’로 통하던 금자는 출소 뒤 감방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했던 복수를 한 단계씩 실현해 나간다.
‘친절한 금자씨’는 분명 앞선 두 영화와는 다르다.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부숴버리고, 담요로 덮은 뒤 전기고문을 하거나(‘복수는 나의 것’), 화의 근원이 된 혀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는(‘올드보이’) 그런 잔혹한 폭력은 없다. 인물들 간에 이중 삼중으로 겹치던 이야기 구조는 하나의 플롯으로 단순해졌다. 복수심에 허덕이다 끝내 자기 파멸하던 인물들 대신, 자기가 저지른 죄가 자신의 영혼에 드리운 앙금을 조용히 바라보며 속죄하는 여성이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은 이영애다.
그는 이 영화에서 이전까지 굳건히 쌓아올렸던 자신의 이미지를 희롱한다.
그러나 이영애의 폭력 장면은 절제돼 있다. “얌전하고 조용한 이미지의 이영애가 잔혹하게 응징을 가하는 식으로 변한다면 그건 선정주의”라는 박 감독의 주문 때문이었을까. 영화 속 금자는 졸린 듯 약간 눈을 내리깔고 권태로워 못 참겠다는 목소리로 13년 연하의 남자에게 말한다. “내가 섹시하다고 생각하니?” 또 말한다. “예뻐야 돼. 뭐든지 예뻐야 돼.” 그리고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친절해 보일까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우 김세원의 착착 감기는 내레이션으로 그때그때 상황을 설명하는 형식을 띤다. 금자의 시선을 따라가면서도 그것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김세원의 목소리는 ‘복수’라는 뜨거움보다 ‘속죄’라는 담담함을 위한 수단이다.
당사자들은 절박하지만 구경꾼들에겐 한없이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박 감독 특유의 웃음 코드는 강화됐다. 목숨이 금자의 손에 달린 백 선생이 금자와, 호주로 입양된 뒤 다시 만난 금자의 딸 제니 사이에서 두 사람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담아 영어 통역을 하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이런 웃음들이 곳곳에 깔리고 애니메이션 효과로 후광을 만드는 등 박 감독은 자신의 재주를 다 펼쳐 보인다.
그러나 영화 3분의 2 지점에서 발생하는 분위기의 반전은 관객을 당황케 한다. 금자의 죄의식이 분산되는 듯한 이 뒷부분은 그때까지 마치 할리우드 영화인 양 즐겁게 박 감독의 변화를 즐기며 ‘친절한 금자 씨’를 따라가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은 주인공의 결단이 관객에게 가져다주는 도덕적 딜레마가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맥락이 잡히지 않는 데서 오는 불안함에 기인한다.
박 감독은 이전까지의 이야기만으로는 자신이 꿈꾸던 복수 3부작의 마무리, 즉 남에게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떠넘기는 남성적 복수에서 벗어나는 여성적 속죄와 반성이 완성될 수 없다고 판단한 걸까. 아니면 너무 친절해 보일까봐 그런 걸까. 18세 이상.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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