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유명선수 복제유니폼‘레플리카’에 빠진 사람들

레플리카 마니아인 신한은행 박영백(33) 대리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서울보훈병원 축구장에서 소장하고 있는 레플리카를 자랑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레플리카(Replica)’를 아시나요. 레플리카는 프로 축구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과 같은 디자인의 복제품으로 서포터스나 축구 마니아들이 일상복처럼 입는다. 야구나 농구와 달리 축구 서포터스 사이에서만 이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최근 레플리카 마니아가 늘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벤투스, 인터 밀란 등 유럽의 명문축구팀 5개 구단의 레플리카를 판매하는 나이키는 국내 시장 규모를 500억 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마니아가 확산됐다.

레플리카 마니아들은 좋아하는 축구팀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응원하며 선수와 일체감을 느낀다. 인하대 체육교육과 김병준 교수는 “유니폼은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한 일체감과 소속감을 준다”고 말한다.

레플리카 문화는 ‘보는’ 스포츠에서 ‘입는’ 스포츠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 좋아하는 선수들을 몸으로 느낀다

레플리카 마니아인 신한은행 잠실점 박영백(33) 대리의 집을 23일 찾아갔을 때, 그의 어머니 최영순(71) 씨는 “(아들이) 도대체 회사에 입고 가지도 못할 옷을 왜 사 모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1999년 축구 주간지를 읽다가 이탈리아 명문축구클럽 유벤투스의 유니폼에 매료돼 서울 동대문 시장의 한 매장에서 구입한 것이 수집의 계기. 10여만 원에 이르는 레플리카를 한 달에 10벌 사기도 해 어머니로부터 잔소리도 들었다.

현재 갖고 있는 레플리카는 400여 벌. 옷장과 침대 밑, 장롱 등 집안 곳곳에 형형색색 축구 유니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스페인 프로축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라울 곤살레스, 유고국가대표팀의 미야토비치 등의 유니폼을 특히 좋아한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그만 모으라고 하지만 내게는 유일한 취미입니다. 그 유니폼을 입으면 마치 유명 축구 선수가 된 듯합니다. 디자인이 예쁜 것도 레플리카를 좋아하는 큰 이유입니다.”

그는 교회 갈 때 입는 옷 한 벌을 제외하면 평상복은 레플리카뿐이다. 얼마 전 회사 야유회 때에는 신축성 있는 ‘쫄쫄이’ 스타일 레플리카를 입고 갔다가 “슈퍼맨”이란 말도 들었다.

쌍용건설에 다니는 손일용(39) 씨도 60여 벌의 레플리카를 갖고 있다. 손 씨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축구 선수냐고 묻기도 한다”며 “남들이 쳐다보는 게 신경 쓰이지만 자기만족이라 괜찮다”고 말했다.

13만 원을 주고 레플리카를 사면 앞 자릿수는 빼고 3만 원에 샀다고 아내에게 말한다는 손 씨. 그는 “백넘버와 선수 이름 패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찬물에 중성 세제로 세탁하는 등 레플리카 관리 방법은 ‘고급 의류’ 못지않다”고 말한다.

○ 레플리카로 소통한다

레플리카 마니아인 최재식(24·영남대 4년) 씨는 “AC 밀란의 안드리 셰브첸코를 좋아해 그의 옷을 주로 모은다”며 “옷을 입을 때마다 그의 화려한 플레이가 생각난다”고 말한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신호정(21·경원대 1년) 씨는 “2년 전 아르헨티나와 한국 팀이 경기할 때 좋아하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선수의 옷을 입고 응원했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레플리카는 박스형에다 원색이어서 코디가 쉽지 않지만 선수와 같은 옷을 입는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

문화평론가 김종휘 씨는 이에 대해 “직장이나 학교에 대한 소속감이 크던 예전과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준거집단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두고 그에 대한 이미지를 스스로 키워 나가면서 만족감을 얻는다”며 “차별화된 레플리카를 통해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단체 문화를 이뤄간다”고 말했다.

레플리카 마니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 서로 거래를 하기도 한다. 1만70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다음 레플리카 마니아스(http://cafe.daum.net/replicamanias) 사이트에는 나라별 선수 번호와 이름, 마킹(백넘버와 이름을 새기는 것) 위치, 레플리카 구입처 전화번호, 벼룩장터 등을 안내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 시장에 있는 레플리카 전문 매장 ‘엄브로’의 김영수 사장은 “10, 20대 남성이 많은 마니아들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레플리카를 구입하고 오프라인에서 마킹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한편 레플리카 중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과 소재 등에서 선수들의 옷과 똑같은 것을 어센틱(Authentic)이라고 한다. 통상 어센틱은 13만 원, 레플리카는 7만 원 수준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허영윤(영남대 언론정보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