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필리어 역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하면 다들 웃으면서 그러더라고요. 그거 ‘실험극 햄릿’이냐고.”(연극배우 고수희)
TV에서 ‘삼순이’가 넉넉한 몸매로 스타가 됐다면, 무대에는 그들이 있다. 연극의 고수희, 뮤지컬의 박준면. 서른 살 동갑내기인 두 여배우는 (요즘 유행어를 빌리면) ‘출산드라의 축복을 듬뿍 받은’ 몸매 덕분에 비슷비슷해 보이는 다른 여배우들과 뚜렷이 차별된다.
‘뚱뚱한 여배우’가 필요한 대표적인 캐릭터는 뮤지컬 ‘맘마미아’의 로지와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영자 역. 뚱뚱해야 하지만, 뚱뚱하다고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결국은 실력. 박준면은 여기에 “적당한 섹시함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여배우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기도 힘들다. ‘맘마미아’ 때는 조건을 갖춘 40대 후반의 여배우를 찾지 못해 결국 중견 배우 이경미가 5∼6kg 살을 찌워 로지 역을 맡았다.
“무명시절엔 살 빼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다른 여배우들과 군무를 추는데 나만 몸이 튀니까. 하지만 이젠 오히려 덕 보는 측면도 있어요. 이런 체형의 여배우가 드물다 보니 여러 장르에서 부르더라고요.”(박준면)
고수희는 올해 상반기에만 ‘친절한 금자씨’ 등 3편의 영화를 찍었다. 덕분에 동료 연극배우보다 더 바쁘고, 더 많이 번다. 하지만 배역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대부분 조연. 고수희는 농담처럼 “작품 고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건 출연 분량”이라고 할 정도.
“키 163cm에 몸무게 82kg”인 박준면은 “나의 몸과 역할에 만족하며 절대 살을 빼지 않겠다”고 했다. 반면 고수희는 현재 다이어트 중. “아무리 작품마다 변신해도 비슷한 이미지로만 느껴져서”다.
한 연극기획자는 “관객이 기대하는 여주인공 이미지가 있다 보니 뚱뚱한 여배우들은 강한 조연으로는 유리하지만 주인공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수희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연극 ‘청춘예찬’을 흥행시킨 연출가 박근형의 생각은 다르다.
“여배우의 몸에 대한 관객의 편견의 벽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의 연기는 콘크리트도 뚫을 수 있다고 믿는다. 몸은 그저 몸일 뿐,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배우의 본질이니까. 나는 ‘뚱뚱한 고수희’를 캐스팅한 게 아니라 연기 잘하는 여배우를 캐스팅했는데 그녀의 몸이 뚱뚱했을 뿐이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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