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4년째에 접어든 40대의 평범한 유부녀 케이티.
그녀는 어느 날 남편과 전화통화를 하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뱉어버린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데 깜짝 놀랐다. 그것도 주차장에서, 휴대전화로.
그녀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꽤 똑똑하고, 성숙하며,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좋은 의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함께 호텔 침대에 누워 있고, 방금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스스로를 ‘20세기 후반의 모범생’이라 여기는 케이트. 그녀는 도덕적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며 살아왔다. 자신은 항상 착한 사람이고 결혼 생활의 모든 문제는 못난 남편 탓이었다.
그러나 이혼을 통보한 뒤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지금까지 내가 나답다고 여겼던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왔다.’ 케이티는 냉소적으로 변해 가는 자신에게서 심한 영적 고갈을 느낀다. ‘하느님은 짐을 싸서 이사를 가신 게 분명해!’
지금껏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던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의 의미는 빛이 바래고 있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익살과 지성, 풍부한 감성을 동시에 지닌 작가’(뉴욕타임스)는 유리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현대사회 가족의 모습을 시종 신랄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곪을 대로 곪은 상처에서 속 깊은 눈물을 자아낸다. 대중문화의 기호와 상징에 기대 캐주얼하게 현대인의 급박한 주제를 풀어 가는 소설은 ‘배꼽 빠지게 우습다’. 그러면서도 서글프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는 영화 ‘피버 피치’ ‘어바웃 어 보이’의 원작자.
행복하고 착하게 살고 싶다고? 일견 소박해 보이는 소망은 이 ‘포스트모던’한 사회에서 얼마나 이루어 내기 힘든가. 생의 목적과 의미를 잃은 채 부유하는 현대인들. 그들은 구원의 환상을 좇아 하릴없이 버둥거린다.
작가는 새로운 도덕과 삶의 가치로서 일상성의 회복을 조심스레 제안하려 한다. 소설의 끝 부분에서 케이티는 자신을 절망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삶의 불꽃은 바로 가족의 소중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은 끝내 냉정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막힌 하수구를 뚫고자 모처럼 온 가족이 한 몸이 되었다. 서로에게 의지한 채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케이트. 그녀는 가슴 한편에 따스한 가족애가 차오르는 걸 느낀다.
‘우리 가족! 나는 생각한다. 그래, 바로 이거! 그렇다면, 할 수 있어. 이 삶을 살아갈 수 있어. 할 수 있어. 이게 내가 간직하고 싶은 점화 불꽃이야. 다 나간 배터리가 내는 생명의 부릉부릉 소리야. 하지만 그만 잘못하는 바람에 하필 그 순간 나는 남편 너머로 밤하늘을 흘끗 바라보고 말았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또 어찌할 것인가. 외롭고 허무하고 무기력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사랑하고, 어떻게든 행복하고, 어떻게든 살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원제 ‘How to be good’(2001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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