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24>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0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밤이 깊어지면서 성고성 안은 더욱 술렁거렸다. 모든 군민(軍民)이 잠자지 않고 웅성거리며 성안을 몰려다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서문뿐만 아니라 동문과 남문 쪽에서도 금세 인마가 뛰쳐나올 듯 드러내놓고 소란을 떨었다. 사람이 와글거리고 마소가 울부짖으며 창칼과 갑주가 절그럭거리는 것이 어느 성문이 먼저 열릴지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삼경 무렵이 되면서 먼저 서문 쪽 성벽 위의 횃불이 꺼지더니 갑자기 성문이 열리며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온다. 한 놈도 놓치지 말라!”

그쪽을 맡고 있던 계포와 환초가 그렇게 초나라 군사들을 다그치고 패왕 항우도 기마대를 이끌고 그리로 달려갔다. 하지만 요란스러운 발굽소리와 달려 나온 것은 다치거나 병들고 여윈 마소 수십 마리와 한 무리의 노약자뿐이었다.

“속았다! 서문은 아니다. 다른 곳으로 가자.”

성문 쪽으로 다가가던 패왕이 그렇게 외치며 군사를 돌리려 하는데, 이번에는 동문 쪽 성벽 위가 훤해지며 크게 함성이 일었다. 패왕이 급히 그리로 말을 몰아 가보니 수천의 한나라 군사들이 성벽 위로 몰려나와 횃불을 밝히고 성벽 아래로 활과 쇠뇌를 쏘아붙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인마가 뛰쳐나올 듯한 성문 안의 수런거림에 속아 성벽 가까이 바짝 다가서서 기다리던 종리매의 군사들이 그 갑작스러운 화살 비에 비명을 지르며 내쫓겼다.

“남문이다! 남문으로 가자. 유방은 틀림없이 남문으로 달아날 것이다.”

패왕이 갑자기 그렇게 소리치며 남문으로 군사를 몰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도 동문과 꼭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뿐, 성문을 뛰쳐나오는 인마는 없었다. 그제야 이상한 느낌이 든 패왕은 북문으로 달려가 보았다.

“대왕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북문 밖을 멀찌감치 에워싸고 있던 아장(亞將)이 놀라 패왕을 맞으며 물었다.

“이곳은 별일이 없느냐?”

“그렇습니다. 아직 성문을 나온 군사는 없습니다.”

아장이 태평스레 대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떨림에 패왕이 갑작스러운 의심으로 물었다.

“과인은 성안에서 대군이 밀고 나온 것을 묻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사람 하나, 말 한 필 지나가지 않았단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다만….”

그러자 그 아장이 갑자기 말을 더듬거렸다. 패왕이 그 말꼬리를 잡고 다그쳐 물었다.

“다만, 어찌 됐다는 것이냐?”

“초저녁 이곳에 자리 잡으려 할 때 북문에서 이어지는 관도(官途)로 수레가 달려가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 적이 있습니다. 급하게 기마를 놓아 뒤쫓게 해보았지만, 자취를 쫓을 수 없는 것이 아무래도 저희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성나기보다는 왠지 가슴이 철렁하였다. 드디어 한왕 유방, 이 능구렁이 같은 놈. 또 빠져나가고 말았는가 싶으며 온몸에서 맥이 쭉 빠졌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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