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개인의 결단이나 의지로 천재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천재야말로 누적된 시대의 산물 아닐까요.”
지난달 27일 오후 2시 반 서울 종로구 원남동 연구공간 ‘수유+너머’ 2층. 매주 수요일이면 이곳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옛 서당에서 쓰던 앉은뱅 이책상에 둘러앉은 20명의 늙은‘학동’들이 니체의 철학을 논하는 것을 젊은 ‘훈장’이 열심히 듣고 있다.
고전읽기를 통해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는 학문자율공동체‘수유+너머’가 지난해부터 최우수 연구 인력을 투입해 운영하는 6개월 코스의 강학원 ‘이론 강좌’의 풍경이다. 이번 기의 강좌는 ‘반시대적 고찰’ 등 니체의 저술 4권을 읽으면서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의 니체 해석을 함께 배우는 과정이다.
훈장은 고병권(34) ‘수유+너머’대표.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니체 철학 연구로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고 대표는 ‘수유+너머’의 창립멤버로 2001년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 등의 저서를 발표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학동들은 대학 1학년생부터 대학원 철학과 국문학과 석·박사 과정 학생, 교수, 출판사 편집장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매주 두꺼운 원전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며 6개월 과정의 마지막에는 논문 형식의 글을 제출해서 통과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는 까다로운 입학조건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은 5명씩 조를 이뤄 최대 200명이나 되는 ‘수유+너머’ 회원들의 한 끼 식사를 손수 준비해야 한다.
이날의 과제는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에 등장하는 ‘위대한 철학자’와 ‘철학적 하인’을 비교한 글쓰기. 수업시작 30분 전 학생들은 5명씩 조를 이뤄 각자의 글쓰기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상호비판하고 토론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출석까지 불렀다. 2명의지정발표자의 발표문 낭독과 학동들의 난상토론 이후 훈장의 강의는 토론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펼쳐졌다.
“니체는 우리 모두 내면에 천재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천재가 피곤할 것이라 말했지만 니체에게는 피로야말로 가장 큰 적입니다. …니체에게 A에서 A'로 바뀌는 것은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인 채 그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니체가 말한 천재는 반시대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이죠.”
그 천재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 고 대표는 철학자를 ‘자연이 인간세계에 박아둔 화살’로 묘사한 니체의 비유를 들려주며 철학자들의 사상을 받아쓰는 ‘철학적 노동자’가 되지 말고 그 철학자를 화살로 삼아 진리를 향해 쏘는 ‘미래의 철학자’가 되라고 답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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