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28>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8월 5일 03시 10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등공(謄公) 하후영은 뒤쫓는 초군 기마대를 따돌린 뒤에도 30리나 북쪽으로 내달은 뒤에야 말고삐를 당겨 빠르기를 줄였다. 하후영의 등 뒤에서 수레 채를 잡고 가슴 졸이던 한왕도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뒤쫓는 적병은 없는 듯하구나.”

“그렇습니다.”

하후영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슬며시 고삐를 당겨 수레를 끄는 말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려 했다. 어둠 속에 한 갈래 동서(東西)로 난 길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왼편으로 가면 서쪽 관중(關中)으로 돌아가는 길로, 하후영은 당연한 듯 그리로 길을 잡으려 했다. 그때 한왕이 문득 소리쳤다.

“멈추어라. 수레를 동쪽으로 몰도록 하라.”

“관중으로 돌아가시지 않으십니까?”

하후영이 희끗 뒤돌아보며 알 수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한왕이 전에 없이 지긋한 목소리로 물음을 받았다.

“적은 과인이 성고를 빠져 나갔음을 알면 반드시 관중으로 갈 줄 알고 그 길을 끊으려 할 것이다. 거기다가 무사히 관중으로 돌아간다 해도 승상 소하(蕭何)가 과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새로 긁어모은 장정 몇 만일 터인데, 제대로 된 장수 하나 없는 그런 까마귀 떼 같은 군사로 과인이 무슨 일을 하겠느냐?”

“장량과 진평을 비롯해 성고에 남은 장수들도 모두 틈을 보아 대왕을 따라 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기약할 수 있는 일이 못되거니와, 설령 그리된다 해도 너무 더디다. 한신과 장이가 조나라를 평정하고 여러 달에 걸쳐 길러낸 5만 정병에 견줄 바 아니다. 그들이 수무(修武) 쪽으로 오고 있다 하였으니, 동쪽으로 가자. 그들을 거두어 하루 빨리 항왕을 되받아치는 것이 지금 형편없이 기울어진 전세(戰勢)를 되돌리는 길이다.”

“대왕께서 홀몸으로 쫓겨 가시어도 한신과 장이가 대왕을 임금으로 받들며 곱게 대군을 바칠는지요.”

“한신은 등공이 처음 내게 써볼 만하다고 천거한 사람 아닌가?”

“그때 신이 천거한 것은 한신의 재주이지 충심이 아닙니다.”

“신하된 자에게는 충심도 큰 재주가 된다. 게다가 조왕(趙王) 장이는 과인이 저를 왕으로 삼았을 뿐더러 젊어서부터 저와 교유한 적이 있어 그 사람됨이 충직함을 잘 안다. 아무 걱정 말고 어서 말을 동쪽으로 몰라!”

한왕이 그렇게 잘라 말하자 하후영도 미덥지 않은 대로 그 뜻을 따랐다. 얼른 말머리를 동쪽으로 돌려 밤새 수레를 달렸다. 날이 훤해질 무렵 한왕이 탄 수레는 한 갈래 하수(河水) 지류를 만났다. 하후영은 어렵게 배를 구해 말과 수레까지 함께 물을 건넌 뒤 다시 수무로 달려갔다.

한왕과 하후영이 수무에 이른 것은 이튿날 한낮이었다. 두 사람은 밤새워 달린 데다 다시 6월 염천을 반나절이나 내달려온 말들을 잠시 쉬게 하고 전사(傳舍)에 들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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