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삼순이와 못난이 콤플렉스

  • 입력 2005년 8월 5일 03시 10분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열풍이 여름철 소나기처럼 지나간 듯하다.

마지막 회가 전국 시청률 49%(TNS미디어코리아 조사)를 기록했는데도 ‘삼순 인간형’에 대한 담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 ‘대중문화의 일회성’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아쉽다.

시청률 49%는 엄청난 수치다. 인구의 절반이 같은 시간에 봤을 만큼 빅히트를 했다는 뜻이다. 케이블 위성 인터넷에서 오락물이 넘쳐나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이런 기록은 드라마의 완성도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쏠림이다.

방송가에선 이만한 히트를 하려면 드라마의 흥미 요건 외에 사회나 성(性) 문제에 대한 지배적 정서와 맥락이 닿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삼순이가 내놓은 사회적 정서는 무엇일까. 삼순이는 (실제든, 스스로 그렇게 여기든) ‘못난이’들의 도발을 대변하면서 TV 드라마에서 배제됐던 그들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삼순이는 당당한 막말과 과장된 몸짓으로 못난이들의 응어리를 풀어 줬고 그 상대는 늘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운’ 이들이었다.

삼순이는 버림받은 못난이로 시작한다. 첫 회에 기업주의 아들인 남자 친구가 이별을 선언하자 막말로 맞선다. 남자 친구가 그것을 “반지성적 행동”이라고 하자, 삼순이는 “내 수준에 맞춰 쉽게 말해! 엿 같은 소리 집어치워”라며 쏘아붙인다.

삼순이는 서른의 뚱뚱한 노처녀에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 음식을 평하는 멋진 영어 감탄사를 떠올리지 못해 몸짓으로 얼버무리고, 뚱뚱한 몸으로 춤을 추며 날씬한 이들을 조롱한다.

삼순이의 도발은 세상에 대한 불만이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데도 거침없다. “백수라고? 그게 내 잘못이야? 경제 죽인 놈들 다 나오라고 해!” “많이 굶었다.” “니 입술을 쪽쪽 빨아서 먹을 테야.”

시청자의 반응은 한결같이 “후련하다, 속 시원하다”였다. 특히 부(富)와 미(美)를 찬양해 온 신데렐라 타입과 달리, 삼순이는 드라마 곳곳에서 도발적 어투로 ‘잘난’ 이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있는 삼순의 인기 비결 코너에는 “호텔집 아들이 삼순이 때문에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통쾌했을 것”이라고 분석한 글도 있다.

2000년 이후 시청률이 50%를 넘은 드라마는 ‘허준’ ‘태조 왕건’ ‘파리의 연인’ ‘대장금’ 등. 이 중 ‘파리의 연인’은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다뤘고, 나머지는 인물의 성공기인 데 비해 ‘내 이름은 김삼순’은 못난이의 불만 토로가 기본 줄거리다.

이런 삼순이가 현실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좋은 배경을 가진) 유희진과 김삼순 중 하나를 택하라면 대부분 유희진을 택할 것”(한 누리꾼), “재미는 있지만 삼순이처럼 되고 싶진 않다”(20대 후반 여성) 등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기업 인사담당자 210명에게 김삼순을 채용하겠는지 물어본 결과 56.2%가 “채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결국 삼순이는 집안 학력 몸에 대해 ‘못난이 콤플렉스’를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도발로, 시청자를 대리만족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변화의 동력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계층의 양극화나 경제 하락에 좌절하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삼순이는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때 삼순이는 이번보다 더 도발적인 ‘전사’로 나오지 않을까.

허엽 위크엔드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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