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30>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8월 8일 03시 07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성문을 열어라! 나는 한왕께서 좌승상(左丞相) 한신에게 보내신 사신이다.”

한왕이 문루 앞에 수레를 멈추게 하고 그렇게 소리치자 졸고 있던 군사 하나가 어리둥절해 내려다보며 물었다.

“한왕의 사자가 이 새벽에 웬 일이냐?”

“성고성이 위급해서 급히 달려왔다. 시각을 다투는 일이니 어서 성문을 열어 좌승상 한신 대장군께 안내하라!”

한왕이 다시 한번 소리치자 문루 위의 그 군사는 잠자던 저희 장수를 깨워왔다. 성문을 지키던 장수가 아직 잠에서 덜 깬 채 내려다보니 달랑 수레 한 대에 마부와 스스로 한왕의 사신이라 일컫는 사내 하나가 타고 성문을 열어주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때가 어두운 밤이었으면 그 장수는 경계심이 일어 확인을 하느라 시간을 끌고 또 미리 한신에게 알려 나름으로 한왕을 어떻게 맞이할까를 궁리한 뒤 맞이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훤한 아침이라 두 사람의 차림이 뚜렷이 보이는 데다 태도까지 당당해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졸들을 시켜 성문을 열게 하고 한왕의 수레를 맞아들였다.

“대장군은 어디에 묵고 있는가?”

성안으로 들어서자 한왕이 수레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앞을 막는 장수에게 물었다. 그런 한왕에게서 우러나는 알 수 없는 위엄에 질린 그 장수가 작은 망설임도 없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현청(縣廳)을 중군막(中軍幕) 대신 쓰고 있습니다. 대장군께서는 객청(客廳) 곁에 붙은 큰 방을 숙사로 쓰고 계십니다.”

“알겠소. 내 그리로 가 볼 테니, 장군은 적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밀히 살펴 성문을 지키도록 하시오!”

한왕은 그런 당부까지 하고 등공에게 수레를 몰게 했다. 등공이 잽싸게 수레를 몰아 잠깐 사이에 그 장수가 가리킨 건물 앞에 이르렀다. 그 집 대문 앞에서도 군사 몇 명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길을 막았다.

“비켜라. 대왕의 사자시다. 대장군께 급한 전갈이 있어 밤길을 달려오셨다. 왕사(王使)를 지체케 하여 일을 그르치면 무거운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이번에는 하후영이 나서 그렇게 군사들을 얼러댔다. 거기에 다시 한왕의 위엄 실린 목소리가 더해졌다.

“등공은 저들을 시켜 어서 장수들을 이리로 모이게 하시오. 상장군 조참과 주발, 기장(騎將) 관영을 먼저 불러들이게 해야 하오!”

그 말을 듣자 비로소 하후영도 한왕이 무엇을 믿고 홀몸으로 한신을 찾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일이 어떻게 된지를 몰라 눈만 껌벅이고 서 있는 군사들을 내몰아 먼저 조참과 주발, 관영을 불러오게 하고 이어 다른 장수들도 중군막처럼 쓰이는 객청으로 모아들이게 했다.

그사이 한왕은 혼자 객청 안으로 뛰어들었다. 한신이 사인(舍人)처럼 부리고 있는 장수 하나가 객청 구석에서 졸고 있다가 놀라 한왕을 맞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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