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2>농담-밀란 쿤데라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06분


‘농담’은 밀란 쿤데라의 첫 장편이다. 1967년에 체코에서 발간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장편이 실제로 탈고된 것은 1965년 12월의 일이다. 공산주의 체제 이후 20년간의 사회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실주의 소설이란 비평적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7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네 사람의 화자가 등장해 작품이 진행되며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 소설이라 하는 편이 적절하다.

나치 수용소에서 죽은 벽돌공의 아들인 루드빅은 혁명에 동참한 첫 세대이다. 스무 살 대학생인 그는 한 살 아래인 마르케타와 친구 사이면서 그녀를 좋아한다. 그런데 마르케타는 방학 때 당의 교육 연수에 참여하게 된다. 단둘이 프라하에 남아서 그녀와의 관계를 진척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루드빅에게는 실망이었다. 농담을 이해 못하고 매사에 진지한 마르케타는 연수에 열심이었고 건전한 분위기가 연수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서양에서 혁명은 이제 지척에 와 있다고 적어 보낸다. 농담을 즐기는 루드빅은 그녀에게 농담조의 엽서를 보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분위기는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빅.”

이 엽서가 빌미가 되어 루드빅은 당에서 제명되고 학업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죄과를 시인하면 끝까지 곁에 있어 주겠다는 마르케타의 제의를 거절한 루드빅은 그녀마저도 잃게 된다. 군에 소집되어 정치범임을 알리는 표지를 달고 광산 작업에 동원된다. 군복무 중 그는 루치에란 여성을 열렬히 탐하지만 성적 접근을 거부당한다. 루치에와의 만남의 모티브는 작품에서 숨 막히는 박진감으로 처리돼 있다.

15년 후 루드빅은 자기를 제명한 회의의 의장이었던 제마넥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내 헬레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유혹에 성공한 후 그녀가 남편과 사실상 결별 상태라는 것을 알고 다시 고배를 마시게 된다. 결별을 선고받은 헬레나는 시위성 자살 소동을 벌이는데 변비약을 먹고 변기 위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라블레적인 웃음을 촉발한다. 모라비아 지방의 민속음악 연주 장면으로 소설은 끝나고, 루드빅은 ‘증오의 대상 제마넥을 쓰러뜨리려는 것을 목표로 했던 이 귀향이 결국은 땅에 쓰러진 내 친구를 두 팔에 안고 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전율하였다’.

첫 번째 프랑스어판이 나왔을 때 루이 아라공은 이 책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라고 격찬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의 규탄이라는 반응에 대해서 쿤데라는 ‘농담’은 사랑의 얘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묘지에서 꽃을 훔쳐 애인에게 선물로 준 소녀를 체포한 실제 사건에 영향을 받아 작품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전체주의에 대한 신랄한 규탄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현상학이라고 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설은 본시 아이러니의 예술이어서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는 쿤데라의 소설관을 잊어서는 안 된다.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빈번해지는 짤막한 ‘소설적 사고’도 이 책의 중요한 매력이다. 쿤데라의 또 다른 대표작들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불멸’의 매력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특히 주제나 기법 면에서 ‘농담’은 20세기만이 생산할 수 있는 20세기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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