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32>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어지간히 사람이 모였다 싶자 한왕이 문득 대장군의 인부(印符)와 부월(斧鉞)을 높이 쳐들어 보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부터 한신에게서 대장군의 인부와 부월을 거두고 모든 장수들의 관작과 직책도 새로 정하고자 한다. 먼저 상장군 조참은 나와 과인의 명을 받으라!”

그리고 조참이 장수의 반열에서 나와 서자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조참에게 우승상(右丞相)의 일을 우선 맡기니(가임·假任) 이제부터 조참은 우승상으로서 대장군인 좌승상 한신을 도와 산동(山東)을 평정하는 데 가진 힘을 다하라.”

그리고 다시 주발과 관영을 불러내 명하였다.

“상장군 주발은 과인의 중군(中軍)으로 되돌아와 성고를 구하러 간다. 서둘러 거느린 군사를 점고하여 과인과 더불어 서쪽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라! 어사대부 관영은 그대로 기장(騎將)으로 남아 낭중(郎中)의 기마병을 이끌고 대장군 한신을 따른다. 우승상 조참과 더불어 대장군 한신을 받들고 제나라를 거두어 과인의 근심을 덜도록 하라!”

이어 한왕은 다른 장수들도 각기 그 관작과 직책을 바꾸어 나갔다.

한신이 잠에서 깨난 것은 대장군의 인부와 부월을 거둔 한왕이 한창 장수들의 배치를 바꾸고 있을 때였다. 바깥의 알지 못할 수런거림을 이상하게 여긴 한신이 방 밖에서 숙위(宿衛)를 서던 군사를 불러 까닭을 물었다. 그제야 그 군사가 우물거리며 아는 대로 객청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주었다.

한왕이 새벽에 홀로 수레를 타고 성안으로 달려 들어와 인부와 부월을 거둔 뒤에 모든 장수들을 객청(客廳)으로 불러 모아놓고 있다는 말을 들은 한신은 깜짝 놀랐다. 얼른 옆방에 자고 있는 장이를 깨우고 물었다.

“한왕이 홀로 성안으로 돌아와 중군을 차지하고 모든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하오. 우리 둘은 깨우지 않고 다른 장수들만 불러 모은 까닭이 무엇이겠소?”

꾀를 쓰는 일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한신이었다. 그러나 워낙 뜻밖의 일을 갑자기 당하고 보니 잠시 머리가 굳어진 듯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방금 잠에서 깨나기는 해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차리는 데는 산전수전 다 겪고 나이 지긋한 장이 쪽이 나았다.

“아마도 대왕께서 우리를 의심하시는 듯하오. 우리가 오래 조나라에 머물면서 대왕의 위급을 구해주지 않은 탓일 것이외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번 군사를 거둬 보내주지 않았소? 이제 와서 우리가 갑자기 대군을 빼 서쪽으로 구원을 가게 되면 조나라는 곧 주인 없는 땅이 될 것이오. 힘들여 얻은 조나라를 다시 내놓은 꼴이라 이쯤에서 성고 형양과 조나라 양쪽 모두를 견제하고 있었던 것인데, 의심할 게 무엇이란 말이오?”

한신이 억울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장이가 다시 무언가를 곰곰 생각하다가 어두운 얼굴로 받았다.

“아마도 대왕께 다급한 일이 생겼겠지요. 성고성이 떨어진 것이나 아닐지 모르겠소이다.”

“아무리 성고성이 떨어졌다 해도 장졸 몇십 기(騎)는 남아있지 않겠소? 그런데 우리 대왕께서 홀로 수레를 타고 새벽같이 달려왔다니 실로 알 수가 없소.”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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