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신문과 방송은 연일 그에 관한 뉴스를 토해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났다고 우려했지만 감수성 예민한 문학소년이었던 내게는 도쿄(東京)대 출신인 이 소설가의 엽기적인 죽음이 황홀경으로 다가왔다.
혼자 방에 누워있을 때면, 함박눈처럼 분분히 날리는 벚꽃 사이로 금빛 사원이 장엄하게 불타오르는 풍경이 그의 마지막 얼굴과 겹쳐지곤 했다. 한창 일본 문학에 빠져있던 나는 그때 막 다사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거쳐 미시마의 ‘금각사’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금각사’를 읽은 것이 할복사건 이전이었는지 직후였는지는 분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나가 눈에 뜨이는 일본문학을 통째 사들이고 있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문학 자체보다는 요즘 아이들이 연예인에 몰두하듯 일본문학의 아우라를 쫓아다녔던 것 같다.
그 후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마저 자살하면서 나는 어렴풋이나마 일본문학 속에 흐르는 죽음과 소멸의 미학 같은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죽음은 어떤 행위예술처럼 다가왔고 자신의 문학과 생명을 한순간 혼연일체로 이루어내는 듯한 퍼포먼스에 어린 나는 매료되었던 것이다. ‘금각사’에서도 미(美)와 추(醜), 그 대척점에 있는 의미들이 소멸을 통해 마침내 하나의 점으로 겹쳐진다.
‘…달은 후도야마 밖에서 떠올랐다. 금각은 뒤쪽에서 달빛을 받아 어둡고 복잡한 그림자를 첩첩이 접은 채 차분히 도사리고 있고 구쿄초 화두창(華頭窓)만이 달의 미끄러운 그림자를 받아 넘기고 있었다….’
이 몽환적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금각사에 방화를 하는 말더듬이 청년 승려인 ‘나’는 금각을 불태워버림으로써 그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을 읽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금각사를 실제로 볼 수 있었다. 그 인공미의 극치인 금박 입힌 사원을 보는 순간 어릴 적 ‘금각사’를 읽은 후 품고 있었던 환상이 통째 무너져 내렸다. 현실 속의 금각은 내 마음속에 각인된 금각사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금각사 뜰을 거닐며 문학의 어제와 오늘, 그 무게와 깊이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았다. 교토의 금각사와 미시마의 ‘금각사’. 문학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삶의 비의를 이윽고 드러내는 것.
이 글을 쓰려고 서재에서 책을 꺼내 다시 읽어보았다. 노랗게 삭아 내릴 듯한 종이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묵은 세월의 냄새가 물씬 풍겼지만 그의 탐미적인 문장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요즈음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일본문학과는 확연히 다른 강렬함이 있었다. 미시마는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아른거리는 소멸의 유혹을 작품과 자신의 몸을 통해 완성한 독특한 작가였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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