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35>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럼 장 자방(子房)과 진평은 어찌 되었느냐?”

한왕도 눈물이 어린 눈으로 그 장수를 보며 다시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장수가 아는 대로 대답했다.

“두 분께서는 대왕께서 성을 빠져나가신 다음 날 산동(山東)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서문으로 나가셨습니다. 적에게 잡혔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나 어디 계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마지막으로 성고성을 빠져나온 역상((력,역)商)과 근흡(근(섭,흡))이 피투성이로 달려와 장량과 진평이 간 곳을 알려주었다.

“자방 선생과 진(陳) 호군(護軍)은 관중으로 달아난 듯합니다. 대왕께서 관중의 소(蕭) 승상이 아니라 대장군을 찾아 동쪽으로 가신 일은 저희들도 오늘 새벽에야 들었습니다.”

그런 저런 소식에 한왕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엉거주춤해서 며칠 일이 돌아가는 형편만 살피고 있는 사이에 이번에는 장량이 보낸 사자가 소수무(小修武)로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자방이 과인에게 어찌하라고 하더냐?”

마침 밥상을 받고 있던 한왕이 수저를 내던지고 객청으로 달려 나가 장량이 보낸 사자에게 그렇게 물었다. 사자가 가슴에 품고 온 글을 바쳤다. 한왕이 보니 장량의 글씨였다.

‘신 장량은 호군 진평과 함께 낙양에 머물면서 대왕께 문후 드립니다. 성고를 빠져나온 뒤 바로 대왕을 찾아가지 못한 죄가 작지 않으나, 이렇게 낙양에 자리 잡고 보니 이 또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우리 한나라를 지켜내는 한 방책이 될 듯합니다. 항왕은 성고를 깨뜨리면 그 여세를 몰아 서쪽으로 밀고들 것입니다. 천하의 온갖 화근이 대왕께 있다하여 이번에는 반드시 관중을 둘러엎고 역양을 우려 빼려 들 것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초나라 군사가 관중으로 들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에 신이 가만히 둘러보니, 저희가 머무는 낙양은 함곡관으로 드는 길목일 뿐만 아니라 성벽이 두껍고 높아 지키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또 낙수(洛水) 사이에 있는 공현(鞏縣)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적을 막기에 공고(鞏固)한 땅이라 이름마저 그렇게 붙여졌습니다. 그 두 곳에 각기 용맹한 장수 하나와 군사 1만 명씩만 보내시면, 신과 진 호군이 각기 한 곳씩을 맡아 굳게 지켜보겠습니다.

대왕께서 관중을 버려두고 동쪽으로 가신 까닭은 조나라에서 온 대장군 한신의 군사를 거두시기 위함이었으니, 이제는 대군을 거느리고 계실 것입니다. 어서 빨리 공(鞏) 낙(洛)으로 장졸을 보내시어 대왕의 기업(基業)이 항왕에게 짓밟히게 되는 것을 막으십시오.’

글을 읽은 한왕은 무엇보다도 장량과 진평이 아무 일 없이 성고성을 빠져나갔다는 게 반가웠다. 거기다가 장량이 마치 자신이 한 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아 그가 하는 말에 한층 믿음이 갔다. 한왕은 곧 주발과 역상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들에게 각기 1만 군사를 줄 터이니 밤낮을 가리지 말고 달려 낙양과 공현으로 가라. 가서 자방 선생과 진 호군을 받들고 그곳을 지키되 먼저 나가 싸우지 말고 오직 성안에서 지키기만 하라. 항왕이 낙양과 공현을 잇는 선 서쪽으로 못 가게만 하면 된다.”

그러고는 그날 밤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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