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불멸의 선율, 그 오해와 진실<끝>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뜨거운 8월. 전 세계의 미디어가 제2차 세계대전 종결 60주년을 기념하는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기자도 시간을 되짚어 60년 전인 1945년으로 거슬러 가 보았다. 무력충돌과 막후 외교로 장식된 이해는 음악을 비롯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해였다. 폐허가 된 유럽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기조차 힘겨웠을 것이다.

이해 여름,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초토화된 독일 드레스덴을 찾은 한 이탈리아인이 있었다. 음악학자 레모 자초토였다. 그는 바로크 시대 음악가인 토마소 알비노니(1671∼1751)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연구하고 있었다. 폭격 속에서 자료가 이리저리 흩어지지 않았을까 걱정한 나머지 드레스덴을 찾은 것이다. 드레스덴 국립도서관의 낡은 서가를 이리저리 뒤지던 자초토의 눈이 어느 순간 반짝 떠졌다. “음, 이것은?”

그것은 몇 마디의 선율과 화음표시가 적힌 악보였다. 오묘하게도 자신이 일생을 바쳐 연구한 알비노니의 작곡 스타일과 꼭 맞았다. 자초토는 이것이 그 존재만 알려졌을 뿐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던 알비노니의 소나타 작품 4의 일부분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 작은 부분만으로 소나타 전체를 복원할 수는 없었다. 자초토는 아예 이 짧은 선율을 바탕으로 ‘알비노니에게 바치는’ 새로운 작품을 쓰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해서 ‘알비노니의 단편(斷片)에 의한 현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 g단조’가 작곡됐다.

그렇다면?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알비노니가 아닌 자초토의 작품이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비록 현악과 오르간을 위한 바로크식의 악기 편성으로 쓰였지만, 애절하고 음울한 선율부터가 지극히 후기낭만적인 이 작품을 알비노니가 듣는다면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물며 이 작품이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듣는다면 기절해 버릴지도 모른다.

자초토가 사기를 치려던 의도도 아니었다. 그는 악보 어디에도 ‘알비노니 작곡’이라고 명기하지 않았다. 바로크와 낭만주의 양식도 구분하지 못했던 무지한 음악 저널리즘과 방송이 이 ‘심금을 울리는’ 작품에 알비노니의 이름만을 달아 퍼뜨렸을 뿐이다. 어쨌건 오늘날 알비노니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은 알비노니가 실제로 쓰지 않은 이 작품 덕분이다.

본의든 아니든 타인의 공적을 가로채 이름을 남기고 싶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처럼 자신의 이름이 길이 기억되기를 소망하기는 누구나 매한가지다. 어떻게 살아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가. 사람은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닐까. -끝-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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