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를 버리면 벌을 받는다는 얘기나 죽도록 고생한 아내가 암에 걸려 죽는다는 설정은 그동안 수십 번은 족히 봐 온 줄거리다.
맹순이(최진실)는 5년 연하의 남편 반성문(손현주)과 결혼해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나이 많은 며느리가 못마땅해 늘 불평불만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딸을 키우며, 궁상맞게 홀로 살아가는 친정아버지를 돌보고, 남편의 찢어진 속옷을 기워 입고, 시장에 가면 무조건 물건값을 깎아 ‘짠순이’ 소리를 듣는….
맹순이의 꿈은 미국에 유학 간 남동생이 돌아와 친정아버지를 모시게 되면 남편과 오순도순 살며 수영도 배우고 우아한 레스토랑도 가보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 10주년이 되는 날, 남편은 청천벽력처럼 이혼을 요구한다. 남편은 이혼녀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맹순이는 분노했지만 가정을 지키려고 한다. 남편은 폭행까지 서슴지 않고 이혼을 독촉하고 마침내 이혼을 결심한 그녀는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간다. 암 말기였다.
‘장밋빛 인생’은 시청률 30% 미만인 드라마를 연출한 적이 없다는 김종창 PD가 전작 ‘애정의 조건’에서 호흡을 맞춘 문영남 작가와 함께 만든다.
김 PD는 “통속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전작인 ‘노란 손수건’ ‘애정의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통속적 얘기를 깊이 있게 담아내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의 실제 모습과 가장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것 역시 통속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통속이 힘을 얻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장밋빛 인생’이란 제목은 소박하게 꿈꾸는 장밋빛 인생의 행복마저 쉽게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 붙여진 걸까. 그러나 드라마는 마지막 순간에 진짜 장밋빛 인생을 보여 준다.
바람피운 것을 후회하고 돌아온 남편 반성문은 암에 걸린 아내를 극진히 간호한다. 결국 맹순이는 남편을 용서한다. 진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된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맹순이의 짧은 생애 속에서 처음으로 장밋빛 인생을 그린다.
시사회를 보고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한 가지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 주연인 최진실은 MBC와의 계약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드라마에 출연해 MBC로부터 출연금지 가처분 소송을 당한 상태다. 사태가 이런데도 KBS 정연주 사장은 ‘장밋빛 인생’ 촬영장을 찾아 “내가 최진실 매니저”라며 격려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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