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행사로 개최된 정치경제 문화의 한-러 포럼에서는 유라시아 시대를 열기 위한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놓고 열띤 토론이 있었다. 바이칼호의 알혼 섬에서는 ‘바이칼 천지굿’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일반인을 비롯해 국회의원과 정부, 학계, 문화계 인사 등 300여 명이 두루 참가했다.
필자는 마무리 행사에 참여했다. 현지에 도착해 보니 행사 자체도 중요하지만 왜 대장정을 했으며, 왜 이르쿠츠크에 모였는지 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아시아의 교통중심지인 이르쿠츠크에는 세계에서 6번째로 큰 호수이며 가장 많은 담수를 담고 있는 바이칼호가 자리 잡고 있다. 길이 636km, 면적 3만1500km²(남한 면적의 3분의 1), 호수 둘레 2000여 km.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볼 수 있어 호수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넓다. 수많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수억 년에 걸친 지질활동으로 형성된 다양한 지층을 볼 수 있는 바이칼호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1996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호수 안에 길이 71km에 달하는 알혼 섬이 있다. 우리 민족의 기원이 바로 이 알혼 섬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필자는 바이칼호를 보면서 ‘서울로 돌아가면 언제부턴가 우리가 잊고 있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호연지기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큰 원기(元氣)를 뜻한다. 과거 조상들이 품었던 호연지기를 우리 가슴에도 가득 채울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한민족 수백 명이 이곳에 모인 것은 아닌지….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바이칼호에서 품은 호연지기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분단 50여 년간 비좁은 분단국에 살면서 마음마저 협소해진 듯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지난 50여 년 분단국에서 해양으로 진출해 경제부흥을 일궈 냈다면, 이를 바탕으로 과거 조상들이 누볐던 대륙을 품을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을 지나면 또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 나타나는 곳, 그곳을 넘어서면 유럽 문명이 펼쳐진다. 드넓은 유라시아 지역이 우리의 활동을 기다리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엄청난 에너지원의 확보, 철도 연결을 통한 유라시아 육상 물류의 연결, 광활한 토지를 이용한 식량자원의 확보 등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할 기초자원이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인류 역사를 노마드(유목민)의 역사라고 갈파한다.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인류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한반도를 기점으로 해양과 대륙을 아우르는 긴 여행을 떠날 때가 됐다.
이를 위해 먼저 풀어야 할 숙제가 바로 남북 관계다. 우리에게 중국, 러시아와 같이 광활한 영토가 없다면 그런 활동무대를 얻기 위해 길을 열어야 한다. 남북 간 자유로운 왕래를 통해 북한은 해양을 활용할 수 있으며, 남한은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당장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호연지기를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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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그을린 랠리 팀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당신들이야말로 미래를 개척하는 진정한 노마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이칼에서 느꼈던 뿌듯한 감정이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 다시 갑갑함으로 급변하는 것은 왜일까.
동용승 객원논설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seridys@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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