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은 그 두 사람을 가까이 두고 부릴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믿고 아꼈다. 다만 조구를 내세워 성고를 맡긴 것은 사마흔이 한왕에게 봉지(封地)를 잃고 항복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패왕은 그 일로 전처럼 사마흔을 깊이 믿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다시 찾아온 정성을 높이 쳐 한왕에게 항복한 잘못을 벌하지 않았다.
“삼가 명을 받들어 대왕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이 성을 꼭 지키겠습니다.”
대사마 조구가 패왕이 믿어주는 데 감격하며 그렇게 명을 받았고, 사마흔과 동예도 함께 머리를 조아려 항우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패왕이 덧붙여 말하였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종리매와 용저의 군사들이 이를 것이오. 대사마는 종리매와 용저가 돌아오면 과인의 뜻을 전하시오. 종리매는 1만 군사로 형양을 지키되 역시 성을 나가서 한군과 싸우지는 말라고 이르시오. 또 용저는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과인을 따라 진류로 오되 날짜를 너무 끌지 말라 하시오. 힘을 한곳에 모아 빠른 바람처럼 몰아치지 않으면 보름 안에 그 늙은 쥐새끼를 잡아 죽이고 이곳으로 되돌아오기 어려울 것이오.”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환초(桓楚)가 패왕에게 물었다.
“오창(敖倉)은 누구에게 맡겨 지키게 하시겠습니까?”
그 물음에 패왕이 낯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곳은 한낱 곡식창고에 지나지 않는 곳이 아닌가? 거기다가 하수(河水)를 끼고 있어 지키는 데 많은 군사가 필요한 성이 아니다. 아장(亞將) 하나에 약간의 시양졸(시養卒)을 딸려 주고, 죄수와 부로(부虜)들을 모두 그리로 옮겨 함께 지키게 하면 된다.”
환초는 은근히 자신에게 오창을 맡겨 주기를 바라며 물었으나 패왕이 그렇게 잘라 말하자 군말 없이 물러났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패왕 항우의 전쟁을 보는 안목이었다. 이미 유방과의 전쟁은 천하의 패권(覇權)을 다투는 정치적 권력투쟁의 단계로 들어섰는데도 그에게는 오직 군사적 승리만이 목적인 한바탕 전투의 연속일 뿐이었다. 먹는 것은 군량이란 뜻으로만 이해되어 전투력의 미미한 부분을 이루고 있을 뿐이었고, 따라서 그런 그에게 오창은 또다시 많은 군사를 나눠 지킬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이미 기형적으로 굳어져 버린 초군의 지휘 체계였다. 부리는 자와 부림을 받는 자는 패왕과 그 나머지로 엄격하게 양분되어 있고, 모든 중요한 결정권은 패왕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머지 모든 장수와 병졸들은 패왕의 손발이거나 이와 발톱이요, 도구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패왕의 결정을 간섭하던 범증이 죽은 뒤로는 천하의 맹장 종리매와 용저도, 신의로 이름 높은 계포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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