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깜찍한 금발미녀 vs 서글픈 중년가장

  • 입력 2005년 8월 26일 03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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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무비앤아이
사진 제공 무비앤아이
▼그녀는 요술쟁이▼

기대한다면 실망스럽고, 희망을 접는다면 아기자기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영화가 ‘그녀는 요술쟁이(Bewitched)’다. 1964년부터 8년간 미국에서 방영된 동명의 TV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드라마틱하기보다는 시트콤마냥 소소하고 수다스럽기를 스스로 바라기 때문이다.

마법에 싫증을 느낀 금발마녀 이자벨(니콜 키드먼).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마법계를 떠난다. 우연히 이자벨과 마주친 한물간 배우 잭(윌 패럴)은 자신의 재기작인 드라마 ‘아내는 요술쟁이’에 이자벨을 캐스팅한다. 멋모르는 이자벨을 자신의 상대인 요술쟁이 아내 역으로 등장시켜 자기 혼자 떠보려는 속셈. 하지만 어쩌나. 그녀가 진짜 요술쟁이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으니….

애당초 이 영화는 니콜 키드먼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비현실적’인 요술쟁이 역에 ‘비현실적’일만큼 아름다운 그녀가 아니라면 지구상에서 딱히 적당한 여배우를 물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제 손으론 통조림 뚜껑 하나 딸 것 같지 않은 키드먼이 이 영화 속에서 “아, 궂은 날씨 때문에 머리도 망쳐보고 싶어”라고 배부른 소리를 할 때 우리는 그녀가 ‘꼴값’을 한다기보다는 정말 ‘그럴싸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쇼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를 7년간 맡아온 패럴이 그 멀쩡한 허우대(키가 192cm다)를 가지고 발정 난 수캐마냥 빨빨거리고 미녀를 쫓아다니며 “햇볕 쬐는 고양이처럼 사랑을 듬뿍 쬐고파. 야옹!” 할 때는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여자와 이 남자, 그 밖에는 별달리 인상적인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거다. 이자벨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처럼 드라마틱한 모멘트들이 심심할 정도로 평평하게 지나가 버리니 말이다.

키드먼은 이번엔 목욕하러 잠시 내려온 선녀처럼 보일 작정으로 목소리조차 양양거리며 고양이 소리를 낸다. 4분짜리 샤넬 CF를 찍고 39억 원을 받아 기네스북에 오른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이젠 예쁜 체 좀 그만하고 ‘도그빌’(2003년)을 찍던 벤처정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키드먼, 당신에게도 내면이 있다는 걸 보여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노라 애프런 연출. 25일 개봉. 12세 이상.

▼인 굿 컴퍼니▼

사진 제공 스폰지

스포츠 잡지의 광고 담당 이사 댄(데니스 퀘이드)은 기업합병으로 졸지에 강등된다. 그의 상사로 스물여섯 살의 새파란 젊은이 카터(토퍼 그레이스)가 부임해 자존심이 상한다. 잘난 체만 하는 카터가 못마땅하지만 때마침 딸 알렉스(스칼렛 조핸슨)의 대학 입학과 아내의 임신으로 댄은 품 안의 사표를 던지지 못한다. 이것도 모자라, 원수 같은 직장상사 카터가 자신의 큰딸 알렉스와 도둑 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댄. 그의 눈이 뒤집힌다.

25일 개봉되는 ‘인 굿 컴퍼니(In Good Company)’는 ‘아들 뻘의 직장상사가 자신의 딸과 연애하는 사실을 알게 된 50대 가장’이라는 단 한 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일종의 ‘콘셉트 무비’다. 할리우드 태생의 로맨틱 코미디로서 이 영화의 결말은 뻔하다. 아버지 댄은 결국 상사인 카터에게 마음의 문을 열 것이고, 딸 알렉스와 카터는 결혼에 골인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랑스럽다. 결말이 그렇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해피 엔딩 강박을 훌륭하게 뿌리친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힘은 이 영화 속 모든 만남과 헤어짐이 (실제로는 무척 우연적이지만) ‘진짜로도 그럴 것 같다’는 점이다. 뭔가를 더 넣기보다는 절제하고 빼낼 줄 아는 ‘마이너스의 미학’. 이 영화는 댄과 카터가 △직장에서 이루는 힘의 균형과 △알렉스를 사이에 두고 아빠 대 남자로 이루는 힘의 균형 사이에서 절묘하고도 현실적인 합일점을 찾아낸 뒤 결말을 슬쩍 열어놓는다.

이 영화만큼 ‘쿨’한 건 직장과 인생에서 묘한 긴장을 이루는 두 남자배우다.

데니스 퀘이드는 ‘피닉스’(2004년) 같은 시답잖은 액션영화로 실망시키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년의 피로감을 응축시킨 듯한 그의 황당해 하는 표정은 정말 해리슨 포드 다음으로 일품이다. ‘모나리자 스마일’(2003년) ‘내 생애 최고의 데이트’(2004년)에 출연하며 선악 어떤 역할에도 적격임을 입증한 토퍼 그레이스는 사탕을 쪽쪽 빨 듯 말하는 입 모양이 귀엽고 섹시한 데다 때론 뉴요커 같은 사무적 냄새도 풍긴다. 이 둘의 화학작용이야 말로 극 중 카터가 언감생심 주장하는 바, ‘시너지(synergy·협력상승작용)’다.

‘어바웃 어 보이’의 폴 웨이츠 감독.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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