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일 나가면 학교도 못 가고 어린 동생들을 봐야 했다. 돈을 벌겠다고 도시의 큰 공장으로, 부잣집 식모로 갔다. 그렇게 번 돈을 고향집 생활비에 보태라고, 동생들 공부하는 데 쓰라고 보냈다. 소설가 정지아(40) 씨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그랬다.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과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 ‘슈바이처’ 등을 펴낸 정 씨가 본격 어린이용 창작물인 ‘숙자 언니’를 펴냈다.
어느 날 숙자 언니가 집에 왔다. 이모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사는 게 힘에 부친 이모가 보냈단다. 두고 온 동생 생각이 나서 훌쩍이다가도, 죽어도 학교는 다니겠다고 악을 쓴다. 계란찜 하나 놓고 셋째 언니랑 다투면서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 그 숙자 언니가 언제부터인가 나물을 캐서 팔고 품을 팔아 돈을 모은다. 중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초등학교 졸업식 날 학교를 떠날 줄 모른다. 이 소설은 정 씨가 고향 전남 구례군 반내골에서 보낸 유년 시절 얘기라고 한다. 그때 함께 지냈던 숙자 언니는 열네 살 나이에 어른보다 야무지게 변해 서울로 떠났다.
초등학생 주인공에게는 정겨웠던 추억이지만 숙자 언니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지금 청소년들은 짐작도 못할, 하루하루 먹고산다는 게 큰일이었던 1970년대였다.
정 씨는 작년에 숙자 언니를 다시 만났다고 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숙자 언니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알고 서운해 하자,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잊어버려야 살 수 있었어.”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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