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구술잡기]‘생각발전소’…생각을 정리하는 기법

  • 입력 2005년 8월 27일 03시 05분


◇생각발전소/옌스 죈트겐 지음·도복선 옮김/312쪽·1만3000원

북로드(2005년)

“아이참! 나도 거기까지는 생각을 했는데….”

학생들과 토론수업을 하다 보면 흔히 듣는 한탄이다. 학생들은 무언가 할 말이 떠오르는데도 잘 정리가 되지 않아 애를 태운다. 간지러운 머릿속을 헤매다 보면 어느덧 다른 학생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토론 맥락을 놓치기도 한다.

그러니 아는 것이 많아도 생각을 잘 정리하지 못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떠오르는 착상을 가다듬고 논쟁 속에서 갈피를 잡아 논증하는 법. 학생들은 이 책을 통해 인용하기, 추리하기, 비유하기, 반전시키기 등 20가지의 사고 과정을 차근차근 배워보기 바란다.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생각의 구체적 모습과 주의할 점 등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다. 책에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꼼꼼하게 살펴보기’. 남아메리카의 동해안과 아프리카의 서해안 경계선이 서로 잘 들어맞는다는 것쯤은 세계지도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지나치지 않은 단 한 사람만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다. 바로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둘째는 ‘조금씩 비틀기’.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가 사고(思考)실험을 해서 유명해진 ‘1:1 척도의 지도’ 문제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에게서 얻은 아이디어다. 그런데 보르헤스도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인 루이스 캐럴에게서 빌려 온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은 남에게서 얻은 것이다. 베낀 것을 변형시켜 새로운 이야기로 바꾸어 보는 데서 독창성과 설득력이 높아지는 법이다.

사고의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은 단연 철학자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철학자들의 사고실험을 자주 재료로 삼는다. 사례를 다루는 법을 말할 때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소재로 삼고, 공격과 비난에 대처하는 법에서는 쇼펜하우어와 헤겔을 언급한다. 영감을 기다려서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할 때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배운다. 버거운 철학이론이 말랑하게 반죽되어 생각의 기법을 익히는 수단이 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생각을 계발하는 데에도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이 책에서 배운 방법을 가지고 토론을 통해 순발력 있게 논증하는 법을 익히기 바란다. 구술면접의 의도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고의 질을 평가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권희정 상명사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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