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3色]이은희/휴대전화시대 연 마르코니 무선송신기

  • 입력 2005년 8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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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근길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그런데 그날따라 사람이 좀 더 많다 싶더니 결국 지하철은 고장으로 멈춰서고 말았다. 좁은 차량 안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다 보니 결국 문을 여닫는 센서가 고장 난 것. 지하철 안에 빼곡하게 들어찼던 사람들은 속을 너무 많이 넣어 터져 버린 김밥처럼 승강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투덜거리며 내린 사람들은 저마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직장으로, 거래처로, 학교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승강장은 고장 난 지하철이 토해낸 수많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수에 버금가는 휴대전화들로 그득 들어찼다. 그 광경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휴대전화의 무선 전파가 눈에 보인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 지하철 역사 안은 전파의 얽힘으로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이제 휴대전화는 개인의 생활뿐 아니라 국가경제의 커다란 부분을 담당할 정도로 필수적이고 중요한 물품이 되어 버렸다. 이 작은 친구는 이제 카메라에 MP3 플레이어까지, 라디오에 신용카드 기능까지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재주꾼이 되었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이 무선기계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마르코니의 매직박스’(개빈 웨이트먼 지음·양문·2005년)는 무선통신시대를 연 굴리엘모 마르코니(1874∼1937)에 대해 어릴 적 어느 집에나 한 질씩 갖추고 있던 위인전과는 다른 각도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위인전을 다시 읽는다고 생각한다면 책을 펼치기도 전에 지루해지겠지만, 마르코니가 엮어 냈던 삶의 드라마를 한 세기 뒤의 시각으로 구경하는 재미는 꽤나 쏠쏠하다. 타이태닉호 침몰 사건에서는 그가 발명한 무선통신으로 많은 사람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면서도,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친구 사이이기도 했던 이 독특한 발명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무선통신기기의 원리가 지금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혹은 복잡하게-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코니가 손으로 조잡하게 만든 무선송신기를 사용해 처음으로 ‘S’라는 한 글자를 전송한 지 겨우 한 세기가 지났을 뿐이지만, 이제 지구의 하늘은 만원 지하철만큼 전파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나아가 휴대전화는 단순한 통신기기를 넘어서 다기능 멀티미디어 기기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제는 전화기뿐 아니라 TV와 인터넷 단말기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서비스는 이미 5월에 시작되었고, 지상파 DMB 역시 사람들을 만나러 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지구의 하늘이 더 복잡해지기 전에 DMB가 이끌 변화된 세상에 익숙해질 채비를 미리 해 보는 게 어떨까. ‘DMB’(박창신 지음·U-book·2005년)라도 넘겨 보면서.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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