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평전’은 가장 비신화적인 비극으로 근대의 예술적 신화를 창조해 간 대표적인 작가의 평전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한 작가의 몽상적 삶을 통하여 진정한 예술가의 체온과 함께 근대의 아픔과 낭만을 경험토록 해준다.
더욱이 이 책이 ‘시를 쓰지 않으면 폐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고은에 의하여 쓰였다는 점에서 이중섭의 드라마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야말로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는 위대한 승리자’로서 숙명적인 허구의 삶을 영위한 이중섭에 대한 전반적인 사실들을 동시대 지인들에게서 도움을 얻어, 예술적 생애와 인간적인 면면을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일부의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그 대다수가 사실에 기초하면서도 ‘무의미의 의미를 의미의 의미’보다 더 숭상했던 시절의 무용담들을 유려한 문학적 표현들로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묘미는 필자의 역동적 허무주의와 현실주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필체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책의 가치를 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오산 시대와 일본 유학, 그리고 부인 마사코와의 극적인 만남, 일본 문화학원 시절의 스케치로부터 열정과 광기, 기행으로 이어지는 그의 예술가적인 초상들과 원산 시대, 제주 피란과 부산, 진주, 대구, 폐허 명동을 비롯한 서울 시절과 함께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운명한 뒤 3일간이나 무연고자로 처리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기까지 전반적인 면모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나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구상, 한묵, 박생광, 박인환 등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언급과 시대적 배경들은 근대의 문화사로서 이중섭과 함께 오버랩되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대학 시절 처음 읽었을 때, ‘아! 예술가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후 예술과 학문의 길을 가면서 나락에 빠질 때 그의 비극과 예술을 향한 운명적인 열정은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이제 시대의 변화만큼 작가들의 의식이나 환경도 변화하였고, 고은이 말한 ‘무의미의 의미’를 찾아보기도 힘들게 되었지만, 이 책의 존재는 어떠한 철학과 각오로 예술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웅변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변함이 없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한인 작가들이 외롭고 지칠 때면 오베르의 반 고흐 묘지를 찾아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는 왜 영웅으로 되새길 화가가 희소한가 아쉬워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41세의 젊은 나이로 근대사의 아픔과 함께 살았던 한 예술가의 진실과, 몽상을 먹고 살았던 시대의 신화들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국민화가’라는 이름으로 작품의 가치와 삶 모두에서 열광할 만한 위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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