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여성신학자들 “새 주기도문 가부장적”

  • 입력 2005년 9월 2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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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계가 주기도문을 새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가부장 논란에 휘말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지난해 12월 주기도문 새 번역안을 공동으로 마련한 데 이어 올가을 소속 교단 총회의 인준을 거쳐 예배 때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여성 신학자들은 한기총-KNCC가 새 주기도문에 성서 원문에도 없는 ‘아버지’ 칭호를 여러 번 넣어 번역함으로써 기존의 주기도문보다 더 하나님을 가부장적 ‘아버지’상으로 고착시켰다고 반발하며 독자적인 번역안을 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KNCC 여성위원회, 한국여성신학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주기도문 새 번역 관련 공청회’를 열어 여성신학자들이 번역한 주기도문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여성신학자들은 한기총-KNCC의 새 주기도문에 기존에 두 차례 나오던 ‘아버지’를 5차례나 사용하고 있어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새 번역 작업을 맡았던 한기총-KNCC 특별위원회에 남성 신학자 59명만 참가하고 여성은 한 사람도 참여시키지 않음으로써 여성들의 견해를 반영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날 남성 신학자 대표로 참석한 한신대 송순열 교수는 “KNCC 주도로 선보인 주기도문은 한국 교회의 보수성과 폐쇄성을 보여 준 대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장윤재 교수 등 100명의 신학자가 여성신학자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공청회를 주관한 KNCC 여성위원회 한국염 위원장은 “앞으로 구어체로 다듬고, ‘빚진 자’를 ‘잘못한 자’로 바꾸는 등의 작업을 거쳐 양성 평등의 입장에서 완벽한 번역안을 확정한 뒤 채택운동도 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기총-KNCC 번역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악에서 구하소서./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여성 신학자들 번역안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소서./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시고,/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오늘 필요한 양식을 우리에게 주시고,/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용서한 것처럼/우리를 용서하소서./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악에서 구하소서./나라와 능력과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멘.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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