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함 뉴스를 접하면서 천순천(陳舜臣)의 소설 ‘청일전쟁’(원제 ‘강은 흐르지 않고’)에서 묘사된 서해 해전을 떠올렸다. 1894년 9월, 서해에서 벌어진 청나라와 일본의 해전은 조선과 동아시아의 운명을 결정한 분수령이었다. 당시 청의 북양함대는 만만치 않았다. 7000t이 넘는 순양함인 ‘정원(定遠)’과 ‘진원(鎭遠)’은 크기와 화력에서 일본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덩치만 컸던 북양함대는 일본 함대를 당할 수 없었다. 청의 서태후가 해군 예산을 몽땅 빼돌려 이허위안(이和園)을 짓는 바람에 해전 당시 정원과 진원에는 주포 포탄이 세 발밖에 없었다.
일찍이 해군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거국적으로 준비해 온 일본의 승리는 필연적이었다. 정원은 침몰했고 진원은 좌초되었다가 일본군에게 나포되었다. 진원은 일본 함대의 일원이 되어 러-일전쟁에 참전했고 이후에는 사격 연습의 표적으로 매각되었다. 정원과 진원의 몰락과 함께 일본은 청을 대신하여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었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갔다.
천순천의 ‘청일전쟁’은 흥미진진한 역사평설이다. 설렁설렁 배웠던 우리의 근대사 실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충격적인 사실들로 가득하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호시탐탐 조선과 만주를 노리던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일본의 위협을 잠재우고 조선을 계속 장악하려 했던 청의 이홍장(李鴻章)과 위안스카이(袁世凱), 나라 안팎에서 밀어닥친 위기에 맞서 악전고투했던 조선의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과 김옥균(金玉均), 전봉준(全琫準)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특히 천순천은 청과 일본의 협공에 맞서 조선의 운명을 부여잡으려 했던 김옥균과 전봉준에게 연민을 보인다. 정변으로 잠시 정권을 잡았으나 청과 일본의 침략적 속성을 깨닫지 못한 김옥균, 일본의 침략성을 인지했으나 그것을 극복할 물리적 수단이 미약했던 전봉준. 천순천은 두 사람이 일찍이 서로 만나야 했다고 충고한다.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하나가 되지 못한 채 외세에 의해 각개 격파된 ‘개화파 엘리트’와 ‘농민군 지도자’의 운명은 작가가 보기에도 안쓰러웠던 것이다.
청과 일본이 서해 해전을 벌일 당시 조선은 그저 관객이었다. 그것도 승자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불안한 표정으로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슬픈 관객’이었다. 그로부터 111년, 대한민국은 독도함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격랑 속에서 더 이상 관객일 수는 없다는 처절한 비원의 상징이다.
여전히 이 나라에서는 수많은 ‘김옥균’과 ‘전봉준’이 나라의 진로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애국심을 갖고 나라를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나라 안팎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읽어낼 혜안을 지녔는지는 의문이다. 바로 그 혜안을 기르려 할 때 ‘청일전쟁’은 참으로 소중한 거울이 될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대외관계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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